세 개의 변기
최승호
1.
변기에서 검은 혓바닥이 소리친다
고통은 위에서 풍성하게
너털웃음 소리로 쏟아지는 똥이요
치욕은
변소 밑 돼지들의 울음이라고
2.
변기여,
내가 타일가게에서
커다랗게 입 벌린 너를 만났을 때
너는 구멍으로써 충분히
네 존재를 주장했다
마치 하찮고 물렁한 나를
혀 없이도 충분히 삼키겠다는 듯이
네가 커다랗게 입을 벌렸을 때
나는 너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고
내 존재를 주장해야 했을까
뭐라고 한마디 대꾸해야 좋았을까
말해봐야 너는 귀가 없고 벙어리이고
네 구멍 속으로 밑빠진 허(虛)구렁인데
3.
나는 황색의 개들이 목에 털을 곧두세우고
으르릉거리는 것을 보았다
똥을 혼자서 다 먹으려고
으르릉거리는 변기같은 아가리들을
개들의 시절의 욕심쟁이 개들아
너희들은 똥을 먹어도 참 우스꽝스럽고 넉살좋게 먹는다
구토도 없이
구토도 없이
나는 개들의 시체 즐비한 보신탕 골목에서
삶은 개의 뒷다리를 보았건만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 ,( 1985, 문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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