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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세 개의 변기/ 최승호

금동원(琴東媛) 2015. 11. 11. 00:24

 

 

 

세 개의 변기

 

최승호

 

 

1.

변기에서 검은 혓바닥이 소리친다

고통은 위에서 풍성하게

너털웃음 소리로 쏟아지는 똥이요

치욕은

변소 밑 돼지들의 울음이라고

 

 

2.

변기여,

내가 타일가게에서

커다랗게 입 벌린 너를 만났을 때

너는 구멍으로써 충분히

네 존재를 주장했다

마치 하찮고 물렁한 나를

혀 없이도 충분히 삼키겠다는 듯이

네가 커다랗게 입을 벌렸을 때

나는 너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고

내 존재를 주장해야 했을까

뭐라고 한마디 대꾸해야 좋았을까

말해봐야 너는 귀가 없고 벙어리이고

네 구멍 속으로 밑빠진 허(虛)구렁인데

 

 

3.

나는 황색의 개들이 목에 털을 곧두세우고

으르릉거리는 것을 보았다

똥을 혼자서 다 먹으려고

으르릉거리는 변기같은 아가리들을

 

개들의 시절의 욕심쟁이 개들아

너희들은 똥을 먹어도 참 우스꽝스럽고 넉살좋게 먹는다

구토도 없이

구토도 없이

 

나는 개들의 시체 즐비한 보신탕 골목에서

삶은 개의 뒷다리를 보았건만

 

 

 

 

시집 『고슴도치의 마을』 ,( 1985, 문학과 지성사)

 

 고슴도치의 마을(문학과지성시인선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