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홍윤숙
황금빛 은행잎이
아직 온 천지 마을길에 찬란한 날개를
파닥이고 있는 동안은
남은 꿈을 조금만 더 꾸리라
이윽고 황홀한 잔치 끝나고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덮일 때
더는 하릴없이 추억의 얼굴들을
캄캄한 터널 속에 깊숙이 밀어넣고
시든 마음도 함께 밀어넣고 봉인을 하리라
봉인된 추억들은 어둠 속에서도
눈부시던 세상을 잊을 수 없어
터널을 온통 금빛으로 칠해놓고
스스로 금이 되어 잠이 들리라
잠이 든 꿈 옆으로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서
그 옆에서 눈 깜박거리며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꿈을 지켜보며
목숨 저미며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
가끔 버석거리는 가슴 틈새로
어쩌면 연녹색 새순 하나
볼록 돋아날까 오금 조이며
-『불교문예』, (2010, 겨울호)
* 얼마 전에 (90세) 돌아가신 홍윤숙 시인님이 85세 때 발표 하셨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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