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내 이름을 아십니까?
금동원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조선의 딸 이용수입니다
열여섯 살 소녀였습니다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었을까요
차라리 두려움과 공포보다 죽음을 먼저 알았더라면
300명의 군인과 5명의 소녀를 태운 트럭은 어디론가 떠나고
대만으로 끌려가 강간당하고
죽음은 너무 멀어 몸부림치면 칠수록
전기고문과 폭행, 감금과 윤간, 짐승보다 더러운
만행을 이겨내기에 나는 너무 어렸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알고 싶지도 알 수도 없습니다
석고처럼 피떡 져 죽은 심장으로 87살의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47년을 숨 쉬며 죽어있는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음의 피고름과 썩은 피는 몸 구석구석을 징그럽게 쓰다듬고
만신창이의 세월은 털어내고 휑궈내도 뽀송하게 마르지가 않습니다
나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나는 어디를 보고 있습니까
먼저 떠난 원혼들의 통곡소리가 들립니다.
그들의 갈기갈기 찢겨 썩지 못한 살점들이 검은 강물 위를 둥둥 떠다닙니다.
나는 두 눈 부릅뜨고 죽어야 합니다
눈감고는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이 원통한 설움과 참혹을
진실은 진심이여야 합니다
진심으로 진실이여야 합니다
역사는 정직 안에서 역사여야 합니다
과거는 과거사가 아니라
거짓된 진실로 눈 멀어있는 지금, 죽지 않은 현대사로 살려놓아야 합니다
나는 곧 죽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지 못합니다
결코 이렇게 죽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열여섯 살 꽃다운 이용수였습니다
오늘도 52명의 이용수는 마지막 유언처럼 말합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진심을 담아 사력을 다한 사과 한마디면 됩니다.
우리들이 제발 편히 눈을 감고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용수: 2015년 5월 28일 현재 생존 할머니 52명 중에 한 분이다
- 시집『우연의 그림앞에서』 (2015, 계간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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