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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고형렬

금동원(琴東媛) 2016. 2. 15. 01:35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고형렬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

이 문장은 성립하지 않고 시상이 전개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말은

상상할 수 없는 걸 상상하므로 항상 제기되는 문제다

그러나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

증명할 길이 없지만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

에르덴조 사원에서 에르덴조 사원을 생각하거나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하려다가 생각을 못하고 놓친다

그들은 먼 나의 생각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문장 성립은 둘째 치고 나는 늘 이렇다

나는 이 사유 자체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말이 꼭 성립해야 하는가

길을 가면서 나는 혼자, 그 생각에 골몰한다

분명하게 말해서 나는 지금

에르덴조 사원에 있는 것처럼 에르덴조 사원에 있다

그래 에르덴조 사원에 내가 있다는 것은

에르덴조 사원에 없다는 것과 진배없다

나에게 에르덴조 사원이 있다는 것은 에르덴조 사원이

없다는 것과 동급의 문제로 제게 될 수 잇다

문제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문제가 발생한다

허나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내가 너무나 고독하다

음률을 맞추며 고통스러워하는 자의 행보

왜 나는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나를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이 문장을 떠올리면 슬퍼진다

에르덴조 사원에 없는 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그런데 그대여 왜 그대는 에르덴조 사원엔 없는 건가

나는 지금, 그때, 에르덴조 사원에 머물고 있어라

나는 정처 없어서 나무처럼 외로워 보인다

나 없는 사막 입구의 산처럼 나는 하늘을 쳐다본다

에르덴조 사원의 하늘에 나타난 눈부신 구름처럼

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도서출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