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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가 있는 골목- 李箱에게/ 변희수

금동원(琴東媛) 2016. 2. 26. 02:10

 

 

의자가 있는 골목- 李箱에게

 

 

변희수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둘 만한 일이오

의자는 오늘도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서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의자는 필요한 것이오,

그런 질문들은 참 난해하오

의자를 옮겨 앉는다 해도 해결되진 않소

책상 위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백지가 있소

기다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소

다행히 의자에게는 의지가 있소

대화할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저 의자들은 참 의젓하오



의자는 이해할 줄 아오

한 줄씩 삐걱거리는 대화를 구겨진 백지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을 이해하오

이해하지 못할 의지들을 이해하오

의자는 의자지만 참 의지가 되오

의자는 그냥 의자가 아닌 듯싶소

의자는 그냥 기다릴 뿐이오

그것으로 족하다 하오



밤이오

의자에게 또 빚지고 있소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소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의자의 체온

의자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오 못 견딜 것 같소

의자는 기다리고 있소

아직도 기다리오 계속 기다리오

기다리기만 하오



여기 한 의자가 있소

의자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골목을 보고 있소

두렵진 않소

 

 

 

-[2016 경향 신춘문예]ㆍ시 부문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