射手의 잠
박 기영
그날, 어둠 쌓인 슬픔 속에서
내가 버린 화살들이
어떤 자세로 풀밭 위에 누워 있는지 모르더라도
나는 기억해내고 싶다. 빗방울이
모래 위에 짓는 둥근 집 속으로 생각이 젖어 들어가면
말라빠진 몸보다 먼저 마음 아파오고,
머리 풀고 나무 위에 잠이 든 새들이 자신의 마당에 떨어진
별들의 그림자를 지우기도 전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둘 수 있는지.
추억의 손톱 자국들 무성하게 자란 들판 너머로
노랗게 세월의 잎사귀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벽에 기대어서도
하늘 나는 새들의 숨쉬는 소리 들을 수 있고,
숲에 닿지 않아도 숨겨진 짐승의 발자국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접혔던 전생의 달력을 펴고
이마에 자라난 유적의 잔가지들을 헤치고 들어가면
태양계 밖으로 긴 꼬리를 끌고 달아나던 혜성이
내가 땅 위에 꽂아둔 화살의 깃털을 집기도 전에
진로를 바꾸어 해보다 더 큰 빛을 발하며 내 품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것도
나는 이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땀 젖은 윗도리 벗고
어둠과 함께 가만히 별자리에 떠 있으면
나는 또 모든 것을
등뒤에 새겨둘 수 있을 것 같다.
태양의 곁에 누워서 자전의 바퀴 굴리지 않더라도
걱정에 싸인 별들이
저녁이면 다시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까닭을.
역마살이 낀 내 잠의 둘레에
어떤 별들이 밤이면 궤도를 그리며 떠돌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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