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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금동원(琴東媛) 2016. 7. 7. 08:0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박은정 역/ 문학동네




  2015 노벨문학상 수상!

  전쟁에 직접 참전하고 살아남은 여성 200여 명의 목소리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녀들의 눈물과 절규로 완성된
  전쟁문학의 기념비적인 걸작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창시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작가 자신은 ‘소설-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이다. 다년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Q&A가 아니라 일반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지만, 마치 소설처럼 읽히는 강렬한 매력이 있는 다큐멘터리 산문, 영혼이 느껴지는 산문으로 평가된다.

  제2차세계대전 중에 백만 명이 넘는 여성이 전쟁에 가담하여 싸웠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의 이름과 얼굴도 기억되지 못한다. 이 책은 전쟁에 참전했던 200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여성들은 참전하여 저격수가 되거나 탱크를 몰기도 했고, 병원에서 일을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전쟁을 겪은 여성들에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변했으며,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는 건 어떤 체험이었나?

  이 책에서 입을 연 여성들은 거의 대부분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전쟁 가담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은 전쟁 베테랑 군인이나 남성이 털어놓는 전쟁 회고담에서는 철저히 배제되어온 이야기이다.


  여성은 말한다, 전쟁의 추하고 냉혹한 얼굴, 배고픔, 성폭력, 그들의 분노와 지금까지도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이 책은 1985년 첫 출간되었고, 2002년 저자는 검열에 걸려 내지 못했던 부분까지 추가하여 다시 책을 출간했다.

  작가가 인터뷰한,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전쟁을 목격한 200여 명의 여인들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네들은 숭고한 이상이니 승리니 패배니 작전이니 영웅이니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이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여인들은 전장에서도 여전히 철없는 소녀였고, 예뻐 보이고 싶은 아가씨였고, 자식 생각에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엄마였다.

  처음 사람을 죽이고 엉엉 울어버린 소녀, 첫 생리가 있던 날, 적의 총탄에 다리가 불구가 돼버린 소녀, 전장에서 열아홉 살에 머리가 백발이 된 소녀, 전쟁에 나가기 위해 자원입대하는 날 천연덕스럽게 가진 돈 다 털어 사탕을 사는 소녀, 전쟁이 끝나고도 붉은색은 볼 수가 없어 꽃집 앞을 지나지 못하는 여인, 전장에서 돌아온 딸을 몰라보고 손님 대접하는 엄마, 딸의 전사통지서를 받아들고도 밤낮으로 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늙은 어머니……

  여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는 죽음이 맴도는 전쟁터 한가운데서 따뜻한 피가 흐르고 맥박이 뛰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생들을 만난다. 평범하고 순박한 우리의 여동생과 언니 또는 누나와 엄마를. 전쟁 앞에 산산조각 나버린 그네들의 일상과 꿈과 사랑을. 그래서 더욱 전쟁이 잔혹하고 무섭다. 여인들은 요란한 구호나 거창한 웅변 하나 없이 조용히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돌아보게 한다.
_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은 여자들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들이 우리에게 하지 않은 전쟁 이야기, 전쟁의 민낯. 그런 전쟁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남자들은 전쟁에서 거둔 승리와 공훈과 전적을 이야기하고 전선에서의 전투와 사령관이니 병사들 이야기를 하지만, 여자들은 전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들은 전장에서도 사람을 보고, 일상을 느끼고, 평범한 것에 주목한다.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의 공포와 절망감이라든지, 전투가 끝나고 시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들판을 걸어갈 때의 끔찍함과 처절함을 말한다. 전장에서 첫 생리혈이 터져나온 경험, 전선에서 싹튼 사랑 이야기도 있다. 그녀들의 눈에 비친 전사자들은 모두 젊거나 어린 병사들이다. 적군인 독일 병사도 아군인 러시아 병사도 모두 가엾기만 하다.

  전쟁이 끝나고도 여자들에겐 또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은 전쟁을 기록한 책이나 부상자들에 대한 서류를 숨겨야 했다. 왜냐하면 다시 예쁘게 미소짓고, 높은 구두를 신고, 결혼 준비를 해야 하는 여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전우였던 여자들을 잊어버렸고 또 배신했다. 여자 전우들과 함께 거둔 승리를 빼앗고 독차지했다. 그렇게, 여자들의 전쟁은 잊혀버렸다.

  아이를 낳고 가족을 돌보는 가정이 여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2차세계대전은 여자들을, 심지어 어린 소녀들까지 전장으로 내몰았다. 조국과 가족의 이름으로 여자들은 총칼을 들고 전선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싸워야 했다.

  작가는 이처럼 전쟁에 직접 참전했거나 목격한 여자들 200여 명의 이야기를 정리해 이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그들의 처절하고 가슴 아픈, 다양한 사연들을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가감 없이 들려준다. 그녀들 각각의 이야기는 200권의 소설과도 맞먹는 강렬한 충격을 준다. 평범한 소녀이고 아가씨였던 각 사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결국엔 그때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고 비명을 지른다




작가 소개


  Све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ексиевич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서부의 스타니슬라브(現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우크라이나인 어머니와 당시 군인이던 벨라루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알렉시예비치의 아버지는 퇴역 후 가족과 함께 벨라루스의 작은 마을로 돌아와 부부가 함께 교사로 근무했다. 알렉시예비치는 재학 중 학교 신문에 다수의 시와 산문을 기고했다. 졸업 후 기숙사 보모, 농촌지역 교사로 2년간 재직하며 소련 대학 진학을 위해 필요한 ‘고용증명서’를 1965년 취득했고, 1966년에는 고멜 시 나로블의 지방 신문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마침내 민스크에 위치한 벨라루스 국립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72년 대학졸업 후 알렉시예비치는 브레스트 지방 베레사의 지역신문사 기자와 공립 학교 교사로 동시에 근무했다. 이듬해 민스크 지역신문에 취직한 알렉시예비치는 저널리즘에 온전히 종사하기로 결정했다. 1976년에는 문학잡지 『네만』에서 통신원으로 시작해 곧 보도부장이 되었다. 같은 해에 첫 서적 『나는 마을에서 떠났다』를 완성했다. 그러나 시골 주민의 도시 이주를 금한 소련 정부의 융통성 없는 여권정책을 비판한 내용으로 인해 출판은 금지되었다. 훗날 알렉시예비치 자신도 ‘보도성이 너무 짙다’며 책의 출판을 반대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알렉시예비치는 단편, 에세이, 르포 등 다양한 문학장르를 시도했다. 당시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가 ‘집단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영역을 개척하던 중이었다. 아다모비치는 알렉시예비치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묘사하는’ 자신만의 문학방식을 모색하는데 중요한 도움을 주었다. 이 방식의 궁극적 목표는 일상의 콜라주 형태로 개인의 목소리의 합창을 만드는 데 있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1983년 탈고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다』에서 처음으로 이 방식을 도입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세계2차대전에서 전투원, 당원, 공무원으로 참전했던 소련 여군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들의 전쟁 중과 후의 운명을 연구했다. 그 후 2년간 책의 출판을 위해 검열과 투쟁하면서 알렉시예비치는 ‘대조국전쟁(세계2차대전의 러시아식 표현)의 영광에 먹칠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소위 ‘반공 태도’로 인해 일자리마저 잃었다. 책은 소련에 페레스트로이카가 도래한 1985년에야 모스크바와 민스크에서 동시 출판되었다 (1987년 독일어, 1988년 영어 번역본). 러시아 국내에서만 2백만 부 이상 팔리며 독자와 비평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작가는 책을 연극과 기록영화로도 각색하였고 영화 버전은 라이프치히 국제 기록영화 주간에서 ‘은비둘기상’을 수상했다.

  알렉시예비치의 두 번째 저서 『마지막 증인』도 소위 ‘이념적 가치의 부재’라는 이유로 출판이 미뤄지다 1985년에 벨라루스에서 빛을 보았다 (1989년 독일어 버전 『Die letzten Zeugen』).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세계2차대전과 스탈린 시대를 겪은 여성과 어린이의 시각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의 고통스러운 경험도 묘사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부가 주도한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운동 덕분에 알렉시예비치는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다수의 라디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완성했고, 영화감독과 협업했으며 유명한 모스크바 연출가 아나톨리 에프로스를 위한 작품 등 다양한 시나리오와 극본을 집필했다.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알렉시예비치는 차기작 『아연 소년들: 아프간 전쟁으로부터 울리는 소비에트 목소리』(1989)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작가는 아프간 전쟁 참전군과 ‘아연 소년들’이라 불린 전사자(이들의 유해는 아연 관에 담겨 돌아왔다)의 어머니와 5백 건 이상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책은 10년 간 지속되었던 아프간 전쟁을 비신화하는 데 기여했고, 이로 인해 알렉시예비치는 1992년부터 여러 차례 민스크 법정에 섰지만 유죄 판결은 받지 않았다.

  1993년에는 다음 작품 『죽음에 매료되다』를 완성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소련 제국의 종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자살과 자살기도를 분석했다. 그 후에는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 참사를 다룬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목소리』(1997)를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참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을 심리적으로 묘사했다.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는 작품을 ‘애도와 고발로 이뤄진 가공할 만한 진혼곡’이라 평가했다. 실제로 핵 ‘사고’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끔찍한 보고서로 이뤄진 이 책은 유사 시 전세계 인류를 위한 지침서가 되었다. 벨라루스 현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센코가 집권한 1994년부터 알렉시예비치의 책은 그녀의 모국에서는 더 이상 출간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은 학교 교과과정에서도 삭제되었다. 1998년 라이프치히 유럽이해 도서전에서 수상한 알렉시예비치는 상금으로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러시아어판을 구입해 벨라루스로 반입했다.

  바로 이 시기부터 알렉시예비치에 대한 벨라루스 당국의 공격이 심화되었다. 그녀의 전화가 도청되었고,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게 되었으며 CIA와 결탁한다는 혐의까지 받았다. 2000년에는 국제피난처도시네트워크(ICORN)로부터 보호를 제안 받아 프랑스 파리에서 몇 년 동안 거주했다. 그 후에는 스톡홀름과 베를린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작가는 독일학술교류처(DAAD)의 ‘베를린 예술가 프로그램’에 초빙되어 자신의 최신 저서를 집필했다. 2011년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 독재정부의 핍박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민스크로 귀국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작품활동 초기부터 ‘목소리의 소설’이라는 자신만의 문학장르를 개척했다. 이에 따라 그녀의 모든 작품은 세계2차대전 시기부터의 러시아 역사와 함께 진행한다. 독일어로 출판된 그녀의 최신작 『Secondhand-Zeit. Leben auf den Truemmern des Sozialismus』 (2013년 9월)는 최근 몇 년간 사회적 격변을 겪은 이들의 정체성 모색 과정을 반영한다. 매 작품마다 알렉시예비치는 많은 인터뷰를 통해 우선 전반적인 그림을 그리고, 그 후에는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각 개인에게서 얼마나 많은 인간성을 찾을 수 있고 그 개인 속의 인간성을 보호’하는 작업을 한다. 정서적 역사에 대한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적 연대기를 접한 많은 이들은 그녀를 구 소련 국가 거주자들의 ‘도의적 기억’이라 칭한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은 35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아울러 다수의 연극, 라디오 드라마, 다큐멘터리의 소재로도 사용된다. 작가는 폴란드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문학보도상(2011)과 독일 도서전 평화상(2013), 2015 노벨문학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독자 리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라떼 | 2015-12-14 /http://blog.yes24.com/document/8333205


 

  문학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해마다 노벨문학상을 누가 탈지 궁금하다. 몇년째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과 많은 독자층을 차지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늘 거론되는 두세 명이 있는데 올해 역시 전혀 듣지도 못한 의외의 인물인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선정되었다. 솔직히 저자의 작품 중에서 가장 대표작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함께 문학책을 읽는 모임에서 선정하지 않았다면 읽어 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개인적으로 전쟁을 담은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세계2차대전에 참여했던 러시아 여성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항상 전쟁은 남자들 중심으로 쓰여진 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사실 그동안 읽은 문학작품 중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책은 없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항상 남자지만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늘 어린아이와 여자들이다. 허나 그들의 아픔을 들려주는 책은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가치 있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도 전쟁터로 향하는 일이 쉽지 않다. 허나 러시아 여성들은 자신의 아버지, 오빠, 남동생들처럼 전쟁터로 향하는데 두려움보다는 함께하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더 강했다는 느낌을 준다. 전쟁터에 있으면서도 그녀들은 남자처럼 위험을 무릎쓴 일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여성이란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전쟁터에서 겪은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순간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녀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전쟁터의 모습을 수시로 떠올리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게 다가온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 훌륭한 귀족 집안의 젊은 아가씨는 정든 집을 등지고 자신의 여성성도 포기한 채, 남자들도 꺼리는 힘든 노동과 의무를 선택했단 말인가? 대체 무엇이 그녀를 전장으로 내몰았을까! 그것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남모르는 은밀한 마음의 번민? 불타는 상상력?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타고난 기질? 애끊는 사랑?"     정말이지 대체 무얼까? 10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진다.....   -p90~91-

 

  전쟁터에서 사람은, 당신한테 이미 말했듯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단박에 드러났소. 그곳에서 감출 수가 없거든. 우리 딸들은 세상엔 다른 방식의 삶도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소. 부모들이 딸들에게 이 세상의 감춰진 추악한 이면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p199-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남편은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병든 몸으로, 우리는 아이도 없죠. 나는 전쟁을회상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도 내 모든 삶은 전쟁중이니까.....  -p230-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나직하면서도 자주 당혹스러워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면할 때, 그리고 과거에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 앞에 섰을 때 놀라고 당황한다. 과거는 사라졌다. 과거는 뜨거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눈을 멀게 하고는 자취를 감춰버렸지만, 사람은 남았다. 평범한 보통의 삶 한가운데 사람만 남은 것이다. 자신의 기억 외에는 주위의 모든 것이 평범하다.   -p255-

 

  여자가 살짝 몸을 일으키더니 나에게 조개로 된 아름다운 분통을 내밀었어. 모르긴 몰라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값나가는 물건인 것 같더라고. 분통을 열었지. 그러자 사방에 총탄이 날아다니고 포성이 울리는 그 한밤에 분 향기가 퍼지는데..... 아, 그건 특별한 무엇이었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나려고 해..... 그 분 향기, 그 조개 뚜껑...... 그 작은 생명..... 여자아기...... 집에 와 있는 것 같고...... 진짜 여자의 삶인 것 같은 느낌...... -p360-

 

  너무나 많은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져 있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모든 사람들의 인터뷰 속에는 여자... 온전히 여자이면서 군인으로서의 그녀들이 담겨져 있다. 전쟁터에 있게 된 그녀들은 남자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몇몇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젊은 여자라면 달마다 찾아오는 마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다리를 타고 흐르는 피, 피에 얽겨붙은 바지를 떼어내지 못한다. 이런 모습을 남자들은 알면서도 외면한다. 행군하는 그녀들이 강을 만났을 때 남자들은 당장 적에게 들켜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숨을 곳을 찾지만 여성들은 강물속으로 들어간다. 몸을 완전히 물에 적시는 그녀들의 모습... 그녀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며 전쟁은 결코 여자에게 친절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알려준다.

 

  러시아 여성들이 예쁘다고 한다. 책에도 너무나 예쁜 여성들이 많이 나온다. 허나 전쟁터에서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많은 여군들의 인기를 받는 장교는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똑같은 군인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에 장교의 마음, 여자들의 마음이 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이와 반대로 아버지와 같은 지휘관은 내일 당장 죽음의 위기에 놓인 것을 알기에 여성들을 위해 특별히 미용사를 불러 한껏 꾸밀 수 있는 하루동안의 시간을 선물한다.

 

  전쟁이 가진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책에 담겨진 인터뷰의 여성들처럼 같은 여자로서 그녀들이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전쟁이 가진 잔혹함, 삶과 죽음, 불편하지만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가슴 아프고 공감이 . 현재의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돌아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안겨주는 책으로 읽기 편한 책은 아니지만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