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대화』: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 이성복 대담
-이성복 저/ 열화당/ 2014
책 소개
1977년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 이성복(李晟馥, 1952- ).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후 지난해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이르기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내놓은 그에게는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수줍게 자리잡았다. 근 사십 년 동안 고통스러운 시 쓰기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이제 지난 시간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시와 산문, 대담 들을 세 권의 책으로 엮어 선보인다. 1970-80년대 미간행 시들을 묶은 『어둠 속의 시』, 마흔 해 가까운 세월의 다양한 사유들을 엮은 『고백의 형식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이루어진 열정적인 대화들을 모은 『끝나지 않는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경북 상주 출생으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경기고교에 입학하여 당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76년 복학하여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 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평가하는 말로 “철저히 카프카적이고 철저히 니체적이며 철저히 보들레르적”이었던 시인은 1984년 프랑스에 다녀온 후 사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 그리고 논어와 주역에 심취했다. 그리고 낸 시집이 동양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남해금산』이다. 이 시에는 개인적, 사회적 상처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었다. 시인은 보다 깊고 따뜻하며, 더욱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뛰어난 시 세계를 새로이 보여준다. 서정적 시편들로써 서사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시집에서 그는 우리의 조각난 삶과 서러운 일상의 바닥에 깔린 슬픔의 근원을 명징하게 바라보면서 비극적 서정을 결정적으로 고양시켜 드러낸다. 이 심오한 바라봄-드러냄의 변증은 80년대 우리 시단의 가장 탁월한 성취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환상소설의 한 장면처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의 묘사,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절규 등을 담아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또한 그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파괴에 능란하다. 의식의 해체를 통해 역동적 상상력을 발휘, 영상 효과로 처리하는 데도 뛰어나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라거나 『그 여름의 끝』 이후의 관념성을 비판받기도 했다. 그는 초기 시의 모더니즘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의 형이상의 세계에 심취하였다.
1989년 「네르발 시의 역학적 이해」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1991년 프랑스 파리에 다시 갔다.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한 모색의 일환으로 시인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와 함께 후기구조주의를 함께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테니스. 시인에게 마치 애인과도 같은 테니스는 그에게 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삶을 보다 즐겁게 만들었다. 2007년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등으로 제5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
목차
서(序)
시·삶·역사 / 윤상수
중년, 시와의 불화 / 이문재
맑은 눈, 정신의 옷깃, 그 명징함 / 김정희
‘날림’에 대한 지독한 강박 / 이문재
삶의 빛, 시인의 숨결 / 송민주
『아, 입이 없는 것들』, 치명적인 매혹(들) / 문일완
흑색 신비의 풍경 / 김행숙
튀어나온 내장으로 환(幻)을 읽다 / 김양헌
문학은 가장 낮은 곳에 머물러야 한다 / 김민영
이성복을 사랑할 때 / 김이듬
김과 백이 만난 사람: 시인 이성복 / 김민정
문득 그런 표정이 있다 / 정우영
삶, 서러움에 대하여 / 박지혜
불가능의 시 / 케이비에스 ‘즐거운 책읽기’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 신형철
예술, 탈속과 환속 사이 / 박준상
수록 대담이 처음 발표된 지면
○출판사 리뷰
“지금 저는 영문자 Q로써 제 시적(詩的) 여정을 생각해 본답니다. 저는 이제 원래 시작했던 지점에 다시 왔고(이번 책 세 권이 Q의 마지막 궁글림에 해당하지요), 이제 그 남은 꼬리 부분이 여우 꼬리처럼 길지, 아니면 돼지 꼬리처럼 짧을지, 지금의 저로서는 알 수 없지요. 어떻든 남은 여생―꼬리가 원래 출발했던 그 지점, 즉 1976-1985년의 지점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을 거라는 점은 짐작할 수 있어요.”
―이성복
어둠 속에 피어난 꽃
1977년 「정든 유곽에서」를 발표하며 등단한 시인 이성복(李晟馥, 1952- ). 1980년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후 지난해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에 이르기까지 일곱 권의 시집을 내놓은 그에게는 어느새 흰 머리카락이 수줍게 자리잡았다. 근 사십 년 동안 고통스러운 시 쓰기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이제 지난 시간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시와 산문, 대담 들을 세 권의 책으로 엮어 선보인다. 1970-80년대 미간행 시들을 묶은 『어둠 속의 시』, 마흔 해 가까운 세월의 다양한 사유들을 엮은 『고백의 형식들』, 그리고 서른 해 동안 이루어진 열정적인 대화들을 모은 『끝나지 않는 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갑년(甲年)을 넘어선 시인은 이제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시인으로서의 그의 자리가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가, 혹 그 달라짐이 발전으로 생각될 수 있는가. 시인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1970-80년대 청년 이성복에게는 시가 전부였다. 오로지 시만을 생각하고 살았던 그의 가슴속에는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들끓고 있었다. 그는 미지의 시에 대한 열정과 고통 속에서 좋은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었으며, 그 고통스러운 꿈속에서 태어난 시들은 당시 독자들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각인되었다. 이제 시인은 이 세 권의 책을 통해 그 치열했던 시절의 견딜 수 없이 아름다운 순간들을 불러내려 한다.
거울 속의 시간―시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더니 기껏, 빌어먹을…… 어머니한테는 말이 안 통한다
아무리 내가 어리석고 나의 시대가 어리석어도 할 말은 있다 카프카, 내 말 좀
들어봐 너처럼 누이들을 사랑한 사람은 없을 거다 누이들은 실험용 몰모트다
아니다, 장님-굴새우-속죄양이다 카프카, 누이들은 나의 시대, 창피 옴팍
당하고 양갈보가 되어도 나의 시대, 사랑한다 누이들! 너희는 잘못한 게 없다
나의 시대는 어리석고, 어리석었고 나는 어지러웠다 어머니, 당대의
씨암탉이시여, 당신이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으니 기껏, 어지러워요, 어머니!
―「병장 천재영과 그의 시대 둘」 중에서, 『어둠 속의 시』
1976년에서 1985년 사이에 씌어진 미간행 시 150편을 묶은 『어둠 속의 시』는,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두번째 시집 『남해 금산』(1986)과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한 이성복의 ‘풍경’이 처음 자리잡은 당시를, 시인은 그의 정신적 성장의 ‘부름켜’로 생각한다. 이 시절 그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비정상의 도시에서 날 선 언어로 선열한 아픔을 토해냈다. 그는 곤핍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 대신 썩어 문드러져 가는 상처를 상처 그대로 느끼며 아파했다. 능멸당한 누이 앞에서 그는 기껏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어머니를 찾는 자신의 나약함을 자책할 뿐이었다. 이 시들을 통해 독자는 이성복의 ‘치욕’과 ‘아픔’의 시편들이 태어난 자리를 정확히 되짚을 수 있으며, 시퍼렇게 살아 있는 감각적 언어, 말의 암편(岩片)들을 통해 ‘불가능’의 꼭짓점에 이른 오늘의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이 세 권의 책은, ‘출판사 열화당(悅話堂)’이 그 모태가 되는 선교장(船橋莊) 열화당 건립 200주년(1815-2015)을 한 해 앞두고, ‘인문열화 200년’이라는 오랜 염원 아래 선보이는 첫번째 출판이다. 그동안 책의 존재형식에 대해 탐구하고 실험해 온 열화당이 ‘문학은 결국 문자로, 책으로 완성된다’는 믿음 아래 세상에 내놓는 이 책들은, 문학출판의 다소 희귀하고 이채로운 본보기가 될 것이다. 표지의 ‘인문열화 200년’ 로고는 안상수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출처yes24)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0) | 2016.07.16 |
---|---|
예언자 /칼 지브란 (0) | 2016.07.13 |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0) | 2016.07.07 |
빈 배처럼 텅 비어/ 최승자 (0) | 2016.07.05 |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0) | 2016.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