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장폴 사르트르 저/정명환 역 | 민음사 | 원제 : Les Mots
노벨상에 선정되고도 최초로 그 수상을 거부한 작품 『말』. 1964년 10월 22일, 사르트르의 회고록 『말』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사르트르는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반대 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말』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데, 이에 따라 책 역시 1부 ‘읽기’와 2부 ‘쓰기’로 구성되어 있다. 문학적 교양을 가장 높은 정신의 작업으로 알고 문학 교수가 되려고 했던 조부의 서재는, 어린 사르트르에게는 일종의 엄숙한 사원인 동시에 희한한 놀이터였다.
작가소개
1905∼1980. 파리 출생으로 두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외조부 슬하에서 자랐다. 메를로 퐁티, 무니에, 아롱 등과 함께 파리의 명문 에콜 노르말 슈페리어에 다녔으며, 특히 젊어서 극적인 생애를 마친 폴 니장과의 교우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평생의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와도 그 시절에 만났다. 전형적인 수재 코스를 밟아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그는 항구 도시 루아브르에서 고등학교 철학 교사로 일하다가 1933년 베를린으로 1년 간 유학, 후설과 하이데거를 연구하였다.
사르트르는 1938년에『구토』를 출간하여 세상의 주목을 끌며 신진 작가로서의 기반을 확보하였고, 수많은 독창적인 문예평론을 발표하였다.『존재와 무』『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변증법적 이성비판』등을 발표하고『레탕모데른』지를 발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2차 대전 전후 시대의 사조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상가로 평가받았다.
그는 많은 희곡을 발표하여 호평받기도 했는데, 『파리떼』『출구 없음』『더럽혀진 손』『악마와 신』『알토나의 유페자들』 등은 그 사상의 근원적인 문제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그때마다 작가의 사상을 현상화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64년, 『말』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한 일화로 유명하다. 1980년 4월 15일 작고할때까지 끊임없이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목차
1부 읽기
2부 쓰기
출판사 리뷰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나’라는 말은 ‘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쁨을 알았다.“
사르트르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자유정신과 진실 추구사상, 그리고 풍부한 지식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 ·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1964년 10월 22일, 사르트르의 회고록 『말』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으나 사르트르는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 문학의 제도권 편입 반대 등을 이유로 수상을 거부하였다. 이는 노벨상을 거부한 최초의 사건으로서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성, 사르트르의 명성을 한층 드높여 주었다.
현명하고 조숙했으며 누구보다도 자존감 강했으나 학교에서는 받아쓰기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 아이 사르트르. 그 열정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어린 시절 이야기는 ‘대문호’ 장폴 사르트르의 인간적 매력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적 저서와 문학 작품의 씨앗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왜, 자서전인가?
일반적으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자서전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읽는 행위는 소설을 쓰고 읽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소재로 전개한 이야기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발표하는 것이며, 독자는 그 이야기에서 인생과 사회에 관한 지식이나 교훈을 얻고 또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반성의 계기로 삼으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자서전의 작가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고백이나 경험담에는 소설 이상으로 참되고 중요한 내용이 담겼으리라고 상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르트르가 그의 자서전 『말』을 발표했을 때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계약 결혼, 실존주의, 참여문학, 공산당과의 숨바꼭질 등으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부단히 화제를 뿌려 온 이 특별한 지성인의 본색이 그 책에 담겨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그가 감히 드러낸 내적 자아에서 그의 개인적 비밀뿐만 아니라, 시대와 인간의 진모를 발견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리고 이 기대는 충족되고도 남았다.
『말』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서전의 하나로 공인되었으며 그 후 부단한 연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리고 시대가 완연히 달라진 오늘날에도 이 책은 세계문학의 한 걸작으로서 독자들에게 필독서로 자리 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 시대를 풍미한 지식인 사르트르, 그의 눈부신 어린 시절을 발견하다
『말』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사르트르가 외조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낸 유년 시절로부터 시작된다. 1부 ‘읽기’와 2부 ‘쓰기’로 나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사르트르의 어린 시절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키가 작고 몸이 약했으며, 가벼운 사시안(斜視眼) 증상을 보였던 사르트르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사르트르를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양서로 가득한 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문학적 교양을 가장 높은 정신의 작업으로 알고 문학 교수가 되려고 했던 조부의 서재는, 어린 사르트르에게는 일종의 엄숙한 사원인 동시에 희한한 놀이터였다.
독학으로 글을 깨친 사르트르는 할아버지의 서재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순간 “세계”를 만났으며, 그 세계 속에서 “인류의 지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고 서술한다. 이 책의 세계가 그가 인식한 최초의 세계며 유일한 세계다.
또한 사르트르의 글쓰기는 일곱 살 때 할아버지와 운문의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글쓰기는 곧 산문으로 기울었고, 그는 그 속에서 “행복에 젖었”다고 말한다. 처음에 ‘장난’이자 ‘놀이’로 시작된 글쓰기는 곧이어 문학 교수 겸 문사로서의 소양을 쌓아 가는 과정(이 소양은 한때 문학 교수를 꿈꾸었던 사르트르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불어넣은 것이다.)에서 자신의 존재를 필연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새로운 자기기만의 작업”으로 바뀌고, 곧이어 “문학을 통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고 그 결과로 자신을 구원하는” 사제(司祭)로서의 작업으로 변모한다. 번역가 정명환은 어린 사르트르가 ‘읽기’와 ‘쓰기’의 세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받으려는 일종의 ‘문학병’에 걸려 있었다고, 작품해설에서 서술하였다.
사르트르, 『말』을 통해 문학과 결별하다
사르트르 자신은 『말』이 문학에 대한 고별이었다는 뜻의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그는 이미 1954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자서전에 거듭 수정을 가해서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더 문학적인 문체를 이루었다. 그 이유가 바로 “문학과 멋있게 결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번역가 정명환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르트르가 정치적 참여를 강조하기 위해 선언한 일종의 '과장된 행동'이라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고별’이라는 말이 다만 소설이나 희곡을 쓰는 작품 활동의 중단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맞는 말이다. 실제로 사르트르는 이후, 『말』을 발표한 후 그런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사르트르가 문학 그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한때 그를 사로잡았던 ‘문학병’이지 ‘문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문학과의 고별’로서 남게 된 그의 자서전 『말』은 그 존재적 가치를 한층 드높이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불문학계의 원로, 정명환 전(前) 서울대 교수의 열정으로 가득 찬 작품
1964년 초에 『말』의 출간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그해 가을에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사르트르가 그 상을 거절하여 더욱 큰 화제가 되자, 한 출판사가 고 김붕구 선생과 정명환 선생에게 이 작품의 번역을 부탁하였다. 두 분은 그 부탁을 받아들여 주야불식 작업을 이어 나갔고, 거의 한 달 만에 번역을 끝내야만 했다고 한다. 정명환 선생은 그래서 그 작업이 매우 불완전하였고, 누가 “들추어 볼까 겁이 날 정도로 잘못된 곳이 많았”다고 번역 후기를 통해 밝혔다.
40여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신판은 정명환 교수가 몇 년에 걸쳐 새로이 다듬고 손을 본 작품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반어, 은유, 해학, 상징, 모순어법, 문화적 코드 등이 사르트르 글의 묘미를 한층 더 생생하게 재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고 말했다. 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교정 원고를 몇 번씩이나 꼼꼼히 확인하는 등, 정명환 선생은 『말』을 통해 사르트르와 함께 불문학에 대한 꿈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독자리뷰]문학병이여 안녕!-자하 | 2012-08-31 /http://blog.yes24.com/document/6738231
[말]은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어린 시절을 회고한 글이다. 어머니가 재혼하기 전까지인 12세 무렵까지의 이야기다. 청년기와 장년기를 철저하게 봉인한 것을 보면 사르트르는 일부러 자기성찰적인 정신적인 '뿌리찾기' 여행을 떠나본 것 같다. 어려서 야릇한 '문학병'을 앓으며 정신적 유희만을 일삼았던 사르트르의 유년기는 무척 조숙한 편이다. 어린 사르트르의 모습에서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거절하는 작가로서의 모습이나 위대한 사상가의 판테온에 이름을 올린 실존주의 철학의 거물로 성장할 떡잎을 미리 엿보는 재미도 나름 솔솔하다. 이 유년시절의 회고록은 50대의 노회한 철학자가 집필한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자서전의 틀을 벗어났지만 사르트르는 단순히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만으로도 철학자이자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의 뿌리를 재확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사르트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주장을 일부 믿은 것 같다. 우리의 유년기가 기실 존재의 잠재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로서는 오랫동안 죽음에게, 가면을 쓴 종교에게, 내 인생을 우연으로부터 구출해 달라고 부탁하는 일이었다."
어린 사르트르는 솔직명랑하고 계집애처럼 얌전했다. 성직자인 외할아버지와도 궁합이 제법 잘 맞았다. "어린애와 노인은 한패가 되는 법"이라는 자평처럼 말이다. 외할아버지가 황홀경을 통해 죽음의 불안에 저항하려 했다면, 사르트르는 심미적 글쓰기를 통해 죽음의 불안에 저항하려 했다. 병약하고 가벼운 사시안 증상까지 보였던 사르트르는 책의 세계와 '존재적 글쓰기'에 병적인 집착을 보인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정말 그랬다. 오죽하면 '문학병'이란 신경증에 걸렸다는 자기진단을 내렸겠는가. 흥미롭게도 이 책에는 사르트르가 심미적 글쓰기에서 참여적 글쓰기로 점차 탈변하는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서 문학은 일종의 '비판적 거울'로서 작용하고 사회참여적 속성을 부여받는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 인간은 그 속에 자기를 투사하고, 거기서 제 모습을 알아본다. 오직 이 비판적 거울만이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270쪽)
쓴다는 것은 말한다는 것이고, 말한다는 것은 곧 행동한다는 것. 언어철학자 브리스 파랭의 말을 빌리면, 말을 한다는 것은 권총을 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작가는 글에서 지시하고 설명하고 명령하고 거절하고 질문하고 탄원하고 모욕하고 설득하고 암시한다. 훗날 참여문학을 지지하는 사르트르의 표현을 빌면,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논쟁은 '테러와 수사학'의 논쟁이자, '순교로서의 문학과 직업으로서의 문학'의 논쟁이었다. 그런데 이런 테러와 수사학의 갈등, 순교의 문학에서 직업의 문학으로의 변화가 이 유년시절의 자서전에도 녹아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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