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산식당 옻순비빔밥』
- 박기영 저 | 모악
야성의 생명력을 지닌 시인, 박기영
첫 시집 [숨은 사내](1991, 민음사) 이후 25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내는 박기영 시인은, 신세대 작가로 명성을 떨쳤던 장정일을 문학의 길로 안내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열일곱 살의 장정일을 처음 만나서 그가 첫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낼 때까지 ‘문학적 스승’ 역할을 했다. 이후 박기영은 KBS 방송작가 및 프리랜서 연출가로 여러 프로그램의 제작에 참여했으며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한동안 문학을 떠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집에는 시를 내려놓고 시를 찾아다녔던 시인의 역설적 시간이 삶의 등고선처럼 굴곡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의 그의 역정을 떠올리면 가히 파란만장인데, 그러한 역정 가운데서도 시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간직해온 게 신기하고도 고마울 따름”이라는 이하석 시인의 ‘발문’처럼, 이번 시집에는 박기영 시인의 원초적 생명력인 야성(野性)이 잘 드러나 있다.
작가 소개
출판사 리뷰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북방의 산협과 고원지대를 감싸 안는 서늘한 서정,
곰살 맞고 웅숭깊은 설화적 세계를 돋을새김 하는 서사!
분단과 실향, 상처로 얼룩진 근대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서럽고 외롭고 그립고 안타까운 원시와 야생에 바치는 시편들!
야성의 생명력을 지닌 시인, 박기영
박기영에게 야성은 말 그대로 자연의 생명력이다. 평안도 맹산포수였던 부친의 삶이 ‘살림’을 미덕으로 하는 생명성의 실현이었다는 것, 그러한 동물적 세계가 한편으로는 ‘옻’의 식물성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생명성으로 구현되었음을 시집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맹산포수로서의 동물적 감각과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의 식물적 감각의 스펙트럼은 ‘사내’의 억센 힘과 ‘가시내’의 섬세한 정서를 바탕에 둔 교감의 세계를 추구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에서 우리는 맹산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북쪽 출신 ‘아버지’와 남쪽 출신 ‘어머니’의 교감으로 태어난 박기영 시인의 개인사를 보다 큰 역사적 단위로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시가 개인서사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운명을 점지하고 그 운명공동체의 최종 기착지에서 역사와 더불어 휘발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는 일이다.
타협할 수 없는 세계와의 불온한 동거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읽다보면, 시인의 모습은 “몰이꾼에 쫓기다가도 산마루 올라서면 꼭 한번은 멈추어서 뒤돌아본다는 짐승. 목숨이 미처 못 따라오는 것은 아닐까 확인하다가 죽는다는 짐승”(?도부일기?)과 겹쳐 보인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처럼, 시인은 시간의 경계를 뛰어넘어 과거의 순간들을 격정적으로 짚어낸다. 이때 시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삶을 향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생명들, 그리고 그 생명들이 조그맣게 깃들어 살아가는 울울창창하게 빛나는 영역이다. 무릇 살아가는 것들에게 그러한 삶의 거처는 시간을 뛰어넘어 돌아보게 하는 마력 같은 곳이 아닐까. 시인에게 그곳은 일차적으로 낭림산맥의 골짜기와 능선들이지만, 본질적으로 그곳들은 시인의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기도 하다. 시인은 맹수처럼 삶의 굴곡을 질주하다가 어느 순간 우뚝 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듯 지나온 흔적들을 돌아본다. 바로 이 절정의 순간에서 그의 시는, 맹수의 심장을 겨냥한 총구처럼 단 한 번의 격발로 깊은 골짜기를 울리고 만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자주 거처 잃은 삶이 생각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 난 근본이 반동적이고 불온하다. 주위가 안정되면 스스로를 견디어 내지 못한다. 왜 그런가. 북쪽의 아버지와 남쪽의 어머니의 결합. 남쪽 어머니의 고향마저 온천 개발로 파헤쳐졌다. 그러니까 난 고향이 없는 존재였다. 문학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박기영 시인은 스스로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남북 분단의 이념 갈등과 근대화 · 산업화가 그를 거처 없는 존재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 이면에는 그의 ‘반동적이고 불온’한 내적 성향이 자리하고 있다. 문명화되기 이전의 모든 존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분방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여전히 발휘한다. 그러한 영혼을 담아낼 수 있는, 혹은 그러한 영혼과 어울릴 수 있는 존재란 모름지기 불온해야 한다. 표제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에서 그려내고 있는 불온함으로 그의 시는 타협할 수 없는 세계와의 반동적인 동거에 들어간다.
식당 문 열고 들어가면
서툰 솜씨로 차림표 위에 써놓은 글씨가
무르팍 꼬고 앉아, 들어오는 사람
아니꼬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옻오르는 놈은 들어오지 마시오.”
그 아래 난닝구 차림의 주인은
연신 줄담배 피우며
억센 이북 사투리로 간나 같은
남쪽 것들 들먹였다.
“사내새끼들이 지대로 된 비빔밥을 먹어야지.”
옻순 올라와 봄 들여다 놓는 사월
지대로 된 사내새끼 되기 위해
들기름과 된장으로 버무려놓은 비빔밥을 먹는다.
항문이 근지러워 온밤 뒤척일
대구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먹는다.
옻오르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않던 노인은
어느새 영정 속에 앉아
뜨거운 옻닭 국물 훌쩍이며, 이마 땀방울 닦아내는
아들 지켜보고 웃고
칠십년대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무서운
욕을 터뜨리던 음성만
옻순비빔밥 노란 밥알에 뒤섞여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옻올랐다고 지랄하는 놈은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 놈이여.”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전문
눈치 챘겠지만, 이번 시집에서 ‘옻’만큼 중요한 대상은 없다.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이 표면적으로는 음식 문화에 담긴 삶의 궤적과 그 흔적들을 집요하게 탐구하지만, 감추어진 속내는 음식이면서 또한 음식이 아닌 중용(中庸)의 위치에 놓인 ‘옻’의 문화사적 상징을 포착하는데 있다. 다시 말해 표4에서 이문재 시인이 언급했듯, “음식은 히스토리를 매개하는 미디어로 전환”된다. 그럴 때 ‘옻’은 시인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관장하는 상징처럼 읽힌다. 그것은 ‘옻’이 지닌 생래적 본성 때문일 것이다. 본래 ‘옻’은 그 독성으로 인해 약효를 지니게 된 식물이 아닌가! 반동과 불온함의 싹처럼도 보이는 옻의 독과 약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은 삶과 죽음으로 연장되고, 남과 북의 역사적 사건들마저도 ‘옻순비빔밥’의 동질성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옻’의 이러한 경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 이 시의 말투를 빌려오자면, “옻오르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않”는다. ‘옻’의 역설을 모른다는 것은 삶과 죽음을 알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삶과 죽음을 관장했던 맹산포수의 야생적 기질과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맹산포수의 육성을 빌려 자주 그리고 엄하게 꾸짖는다. “에미나이들은 이 맛을 몰라.”(「청국장반대기」)라고.
김수영의 ‘온몸’으로부터 장정일의 ‘울림’에게로
박기영 시인이 반동적이고 불온한 시적 세계를 일구어온 내력은 김수영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중학교 때 김수영 시인에게 감전된 그는 ‘삶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김수영의 방식을 몸으로 시를 쓸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가 온몸으로 세계와 부딪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그는 온몸으로 세계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던 것이다.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그렇게 온몸으로 삶과 세계에 저항하고 실패했던 순간들의 자기고백이다. 봄이면 검은 수피(樹皮)를 기어이 뚫고 독 오른 혀끝을 내미는 옻순처럼.
1965년 영동에서 보은으로 가던 보천강. 강가에 버드나무들 국수발 같은 머리칼 물위에 드리우고 우리는 한 마리 버들치가 되어 그 속을 헤엄치고 다녔지. 그 한없이 목덜미를 검게 물들이던 검은 먹물로 만든 학생복 입고 외갓집 가던 날. 기억 나, 형?
-「어죽국수」부분
1968년 대구 비산동 / 무허가 판자촌으로 몰려든 사람들 / 밀가루 새알처럼 낯선 도시 떠돌던 시절. / 냄비 바닥 납작하게 깔린 / 팥죽에서는 홀아비 길고긴 한숨 /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동지팥죽」 부분
열네 살 때였다. 눈이 수북이 쌓인 속리산, 처음 외사촌 누이를 만났다. 얼굴에는 가난이 그려 넣은 화장, 붉게 여린 살을 물들이고 겨우 내민 손잔등은 모진 세상살이 채찍이 할퀸 상처로 갈라져 있었다.
-「고등어국」 부분
이번 시집에서 박기영 시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실향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이다. 그는 어쩌면 ‘고향’, ‘본적’ 같은 낭만적 언어와 감성을 지닌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세대 간의 결속력이 약해진 지금, 그의 시가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것들은 1960년대 혹은 열네 살 그 무렵에 온몸으로 만났던 사람들. 그 시절은 한갓 ‘기억’에 불과할 것이지만, 그 기억마저 사라지고 나면 과연 우리에게 그 시절이 존재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모든 기억은 존재했으나 부재할 수밖에 없는, 시인 장정일의 표현처럼 ‘유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장정일은 제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인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 민음사)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스승이신 박기영 형께 이 유고시집-세상의 모든 시집은 다 유고시집이지요-을 바칩니다.’
박기영 시인은 장정일 시인에 대해 “암울하지만 묘한 울림을 주는 친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통해 박기영 시인은 김수영의 ‘온몸’으로부터 ‘묘한 울림’의 시적 세계로 확장해가는 듯하다. 물론 김수영과 장정일의 공통분모에 ‘암울’의 세계가 놓여있다.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의 시편들이 암울한 세계를 온몸으로 밀어붙인 삶의 묘한 울림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박기영이 김수영과 장정일의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깨우쳐준다. 그 사이에서 박기영은 ‘불발탄’처럼 시를 쓰고 있다. 우리에게 투하된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에 실린 시편들은 잠재된 폭발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으며 민감한 뇌관을 장착하고 있다. 박기영 시에 깃들어 있는 그러한 잠재력을 손택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비애와 상처마저도 특유의 무뚝뚝한 어법으로 감칠맛 나는 요리가 되게 한다”고.
지랄 같은 세상
옻이나 한번 올라봅시다.
나뭇가지 끝에
독사 혓바닥 같은 새순들
빳빳이, 고개 쳐들고 올라오고
거들먹거리는 햇살
환장할 것 같이 산기슭 어슬렁거리면
옆구리에 수 삼년 묵은 된장
한 주먹씩 보자기에 싸 꿰어 차고
뒷동산 양지녘 허공에
종처럼 매달려 고개 기웃거리는 옻순들
손바닥 시커멓게 꺾어
겨울 동안 땅속에 숨어 있던 독을
입으로 삼켜봅시다.
달싹하게 나른한 봄독
전신으로 기지개 켜듯 퍼져나가면
핏속에 잠들어 있던 욕망들
살가죽 벌겋게 들어올리고
폭탄처럼 미칠 듯한 근지러움 한꺼번에
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면
시커멓게 옻진 물든 손톱
독수리 발톱같이 날카롭게 세워
악다구니처럼
온몸에 달라붙는 세상 군더더기
한꺼번에 떨어져라 정신없이
긁어대는 옻이나 한번 올라봅시다.
-「옻순」전문
박기영 시인에게 암울한 세계를 온몸으로 밀어붙이는 저력은 “독사 혓바닥 같은 새순들”, 즉 “옻순”에서 비롯된다. 그럴 때 “핏속에 잠들어 있던 욕망들”이 “폭탄처럼 미칠 듯한 근지러움”으로 “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다.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에 실린 50편의 시들이 모두 미 발표작이라는 사실은, 이 시들이 아직 터지지 않은 불발탄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니 이 시집을 읽는 내내 우리는 ‘미칠 듯한 근지러움’으로 몸부림칠지 모른다. 그럴 때는 참지 말고 “손톱”을 “독수리 발톱 같이 날카롭게 세워/악다구니처럼/온몸에 달라붙은 세상 군더더기/한꺼번에 떨어져라 정신없이” 박박 긁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암울한 세상을 긁어대며 “빳빳이, 고개 쳐들고 올라”온 것들이 박기영의 시들이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더러 맹독에 취해 잠깐씩 낭림산맥 골짜기에 까무러치는 순간들도 있으리라. 그 순간을 오롯이 견뎌내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한시절의 ‘유고’를 당장의 세상에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삶과 시, 삶 같은 시, 시 같은 삶
박기영 시인은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선배들이 나에게 라스트 건맨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최후의 총잡이, 낭만주의 끝에 서 있는 인간이란 뜻이겠다. 70년대 순수를 주장할 때 참여였고, 80년대 참여를 주장할 때 순수를 섬겼다. 시대 유행에 동조하지 않고 싶었다. 차라리 폐인이었으면 좋겠다. 삶을 시처럼 살아 보려다 실패한 것 같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1959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대구 달성고등학교를 중퇴한 것,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것, 우리세대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한 것, 장정일과의 2인 시집 [聖 ? 아침], 개인시집 [숨은 사내] 등을 발간한 것, 방송일로 먹고 살다가 충북 옥천에 정착하여 옻을 키우는 것, 그 모든 일들이 삶을 시처럼 살아보려다 실패한 역설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박기영 시인은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에 대해 “이 시집은 내 아버지의 음식이 간직하고 있던 세계를 다룬 ‘1부 낭림산맥을 그리다’, 나의 젊은 시절을 지배한 음식들을 정리한 ‘2부 한 마리 버들치처럼’, 내 주변 사람들의 음식을 다룬 ‘3부 부용대 백사장’, 그리고 그 음식에게서 발견한 깨달음의 세계를 모색한 ‘4부 호두나무 과수원 아래’로 구성 되어 있다. 이 밥상 앞에서 나는 쉽게 숟가락을 놓지 못한다.”고 스스로 의미를 정리하고 있다.
삶과 시, 삶 같은 시, 시 같은 삶. 어느 것이든 우리가 이 시집에서 분명하게 밝혀낼 필요는 없다. 다만 시처럼 살고자 했던 저 오래 전 맹산포수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아무래도/이 시는 못 쓸 것 같다”(?두부에 대하여?)고 여전히 실패를 예고한다는 것, 그리고 또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옻순’처럼 이미 박기영의 시는 ‘독’과 ‘약’이 다르지 않으니, 다만 어느 것을 취하여 읽든 우리는 그의 시가 건너온 25년의 시차 너머 “세상에 조릴 대로 조려져 평생 밑바닥 기면서 살지 않았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묻고 있”(?마주조림?)는 맹산포수를 만나게 될 것이니까.
한국시의 영토를 드넓히는 아찔한 해발의 언어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은 ‘맛’의 전수에 대한 숭고한 수용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가업으로 전수한 살아있는 맛에 대한 자부심으로 엮어낸 웅장한 서사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하석(시인)
“나는 이 서럽고 외롭고 그립고 안타까운 레시피를 가만히 앉아서 읽어낼 수가 없다. 식재료의 산지와 채집 방법이 떠오르고 조리법은 물론 밥상에 둘러앉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 밥상에 분단, 실향, 타향, 망향이 녹아들어 있어서 양반다리를 하고 받아들 수가 없다.”
-이문재(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 시편들은 또한 백석 이후 근근이 유전하는 음식시편들과 함께 옹색해진 한국시의 영토를 한껏 드넓히고 있다. 눈보라 몰아치는 낭림산맥의 쩌렁쩌렁한 얼음 골짜기를 닮은 이 아찔한 해발의 언어는 실로 얼마 만에 만나보는 장관인가.”
-손택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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