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숲』 : 신영복의 세계기행
-신영복 저 | 돌베개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은 1998년에 1, 2권으로 나뉘어 처음 출간되었다. 20세기의 저물녘인 1997년 한 해 동안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지니고 22개국을 여행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세계사가 뒤바뀐 기억의 장소에서부터 세계화의 한파가 몰아치는 삶의 자리까지 선생의 편력은
깊고 너른 여정이었다. 문자 그대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선생의 해박한 지식, 현실에 대한 겸손하되 날카로운 인식, 세상을 향한 정직하고
따뜻한 통찰을 벼린 글과 더불어 그림과 사진으로 엮어낸 이 책은 초판 출간 이후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어
2003년에는 한 권의 합본호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된 『더불어숲』을 초판 발간 18년 만에 돌베개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한다. 이번 개정판은 한 권의 소프트커버본으로 꾸며 책의 무게를 줄였다. 내용을 부분 개정했으며, 표지 제호와 표지·본문
디자인까지 모두 새롭게 바꾸었다. 물론 책에 스민 성찰과 감동은 고스란하며, 오히려 선생의 메시지가 품은 시의성은 더욱 적실해 보인다.
작가 소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1941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육사에서 교관으로 있던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대전 · 전주 교도소에서 20년간 복역하다가 1988년 8 ·15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으로 가득한 산문집이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가르쳤고, 1998년 3월, 출소 10년만에 사면복권되었다.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되어 2007년 정년퇴임을 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저자가 20년 20일이라는 긴 수형 생활 속에서
제수, 형수, 부모님에게 보낸 서간을 엮은 책으로, 그 한편 한편이 유명한 명상록을 읽는 만큼이나 깊이가 있다. 그의 글 안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안에서 만난 크고 작은 일들과 단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정감어린 필치로 그려져 있다.
'일요일 오후, 담요
털러 나가서 양지바른 곳의 모래 흙을 가만히 쓸어 보았더니 그 속에 벌써 눈록색의 풀싹이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봄은 무거운 옷을 벗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던 소시민의 감상이 어쩌다 작은 풀싹에 맞는 이야기가 되었나 봅니다.'슬픔이 사람을 맑게 만드는 것인지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울타리 밖에 사는 우리보다 넓고 아름답다. 시인 김용택의 "아름다운 역사의 죄를 지은 이들이 내어놓은 감옥에서의 사색은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글귀가 공감되는 부분이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이렇듯, 수형 생활 중 자신이 직접 겪으면서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와 사색들은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져내린 뒤 자본의 전일적 지배가 강화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정보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세기말의 상황
속에서 그가 찾아낸 희망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다. 『나무야 나무야』에서 그는 '신발 한 켤레의 토지'에 서서도 푸르고 굳건하게
뻗어가고 있는 '남산의 소나무들'처럼 '메마른 땅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낸다.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오늘의
자본주의문화에 대한 그의 시각은 냉엄하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상한 채 상품미학에 매몰된 껍데기의 문화를 그는 통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정보'와 '가상공간'에 매달리는 오늘의 신세대 문화에 대해서도 그것이 지배구조의 말단에 하나의 칩(chip)으로 종속되는 소외의 극치일 수
있음을 우려하면서,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서히 성장하는 것'임을 갈파한다.
또한 단순히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소나무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무엇 하나 변변히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삶을 반성하면서 자연을 오로지 생산의 요소로 규정하는 현대 문명의 폭력성을 질타한다. 이러한 근본적 성찰의
밑바닥에 가로놓여 있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연대에 대한 옹호이다. 그는, 화사한 언어의 요설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가르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20년 수형 생활을 통해 얻은 가르침과 동양고전을 통해 유연한 세계 인식의 틀을 설명한
『담론』은 부제 그대로 그의 마지막 강의록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고, 가슴에서 끝나지 않고 발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공부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니며,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든다고 역설한다. 책 속 곳곳에 세계와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가르침이 그득 담겨 있다.
그 밖에
다른 저서로는 『손잡고 더불어』『나무가 나무에게』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청구회 추억』, 『다른 것이 아름답다』(공저), 『여럿이
함께』, 『한국의 명강의』(공저),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외국무역과 국민경제』, 『사람아 아! 사람아』,
『노신전』(공역), 『중국역대시가선집』(기세춘 공역, 4권)이 있다. '더불어숲' (http://www.shinyoungbok.pe.kr)
홈페이지에서 저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책 속으로
우리가 많은 유적들
앞에서 매번 확인한 것은 장구하고 육중한 역사의 무게였습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본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확인은
매우 쓸쓸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의 청산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렇고, 완고한 현실의 구조가 그렇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쌓아 온 ‘생각의 성(城)’을 벗어나는 것일 뿐 아니라 그 성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p.12
나는
산타마리아 호 선상에 올라가 멀리 대서양을 바라보았습니다. 신대륙은 물론 보이지 않고 대서양의 푸른 물결만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신대륙이
아닌 고난의 대륙이 바다 저편에 있을 것입니다. 눈앞의 무심한 바닷물과는 반대로 귓전을 스치는 바람 속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항변이 들려옵니다. “세계는 결코 둥글지 않았다”는 당신의 말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신대륙을 찾아 비행기로 이륙하고 있는 수많은 콜럼버스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
p.32
‘우리는 이겼다’는 외침과 ‘나는 이겼다’는 외침 사이에는 참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가 우리들로 하여금
쓸쓸한 감상에 젖게 하는 까닭은 아마 아직도 ‘내’가 ‘우리’를 이겨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철학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p.46
소수의 그룹이나 개인에게 전유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이상이
공유되고 있는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 승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대로 역사가 되고 역사의 반성이
되어 이윽고 역사의 다음 장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의 근현대사에 점철되어 있는 숱한 좌절을 기억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승리와 패배를 기억하는 방법을 바꾸어 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인식의 전환이기 때문입니다. ---
p.139~141
로마 제국은 과연 과거의 고대 제국일 뿐인가. 그것이 전쟁이든, 상품이든, 자본이든 정복이 정지되면 번영이 종말을
고하는 오늘날의 제국은 없는가. 우리는 진정 로마를 동경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잠재우는
거대한 콜로세움은 없는가. --- p.150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쌓아 불멸과 영생을 도모하였듯이, 오늘 우리들 역시
저마다의 피라미드를 쌓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그 쌓은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한없이 충실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 p.156
우리는 아직도 ‘잘 자란다’는 의미에 마음을 쏟을 여력이 없습니다. 경쟁과 효율성 등 사람을 해치고
사람과의 관계를 갈라놓는 일의 엄청난 잘못을 미처 돌이켜 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찍부터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언제나 후회하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p.268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실크로드를 왕래한
물(物)에는 항상 더 많은 문(文)이 담겨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의 상품에서 문을 찾아내기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더구나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금융자본에 이르면 단 한 줌의 문(文)도 담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 p.320
우리의
깨달음은 결국 각자의 삶과 각자의 일 속에서 길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나마도 단 한 번의 깨달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결연함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깨달음은 오늘의 깨달음 위에 다시 내일의 깨달음을 쌓아 감으로써 깨달음 그 자체를 부단히 높여 나가는 과정의 총체일 뿐이리라
믿습니다.
--- p.348
목차
1부
콜럼버스는 왜 서쪽으로 갔는가 / 우엘바 항구의 산타마리아 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전사자 계곡의 십자가
마라톤의 출발점은 유럽의 출발점입니다 / 마라톤 평원에서
TV는 무대보다 못하고 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합니다 / 디오니소스
극장의 비극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입니다 / 소피아 성당과 블루 모스크
No money No
problem, No problem No spirit / 인도의 마음, 갠지스 강
진보는 삶의 단순화입니다 / 간디의 물레 소리
문화는 사람에게서 결실되는 농작물입니다 / 카트만두에서 만나는 유년 시절
초토 위의 새로운 풀들은 손을 흔들어 백학을 부릅니다 /
사이공의 백학
후지 산 자락에 일군 키 작은 풀들의 나라 / 도쿄의 지하철에서
사람이 장성보다 낫습니다 / 만리장성에 올라
애정을 바칠 수 있는 도시가 강한 도시입니다 / 상트 페테르부르크
단죄 없는 용서와 책임 없는 사죄는 은폐의 합의입니다 /
아우슈비츠의 붉은 장미
사상은 새들의 비행처럼 자유로운 것입니다 / 베를린의 장벽
사(士)와 심(心)이 합하여 지(志)가 됩니다
/ 런던의 타워브리지
센 강은 오늘도 바스티유의 돌멩이들을 적시며 흐른다 / 콩코드 광장의 프랑스 혁명
오늘 우리를 잠재우는
거대한 콜로세움은 없는가 / 로마 유감
돌아오지 않는 영혼을 기다리는 우리들의 자화상 / 이집트의 피라미드
동물은 정신병에 걸리는
법이 없습니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
반(半)은 절반을 뜻하면서 동시에 동반(同伴)을 뜻합니다 / 아프리카의 희망봉과 로벤 섬
각성은 그 자체로도 이미 빛나는 달성입니다 / 리우-상파울루의 길 위에서
나스카의 그림은 겹겹의 포장에 감추어진 현대 문명의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 페루 나스카의 시간 여행
정체성의 기본은 독립입니다 / 멕시코 국립대학
보이지 않는 힘, 보이지 않는
철학 / 미국의 얼굴
2부
우리는 꿈속에서도 이것은 꿈이라는 자각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 아메리칸 드림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희생으로써만 가능합니다 / 멕시코의 태양
문명은 대체가 불가능한 거대한 숲입니다 /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
떠나는 것은 낙엽뿐이어야 합니다 / 잉카 최후의 도시, 마추픽추
인간적인 사람보다 자연적인 사람이 칭찬입니다 / 녹색의 희망,
아마존
진정한 변화는 지상의 변화가 아니라 지하의 변화라야 합니다 / 모스크바와 크렘린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눌리게 됩니다
/ 복지국가 스웨덴
노래는 삶을 가슴으로 상대하는 정직한 정서입니다 / 맨체스터에서 리버풀까지
끊임없는 해방이 예술입니다 /
예술의 도시, 파리
우리는 나아가면서 길을 만듭니다 / 몬드라곤 생산자 협동조합
하늘을 나는 새는 뼈를 가볍게 합니다 / 빈에서
잘츠부르크까지
나를 뛰어넘고 세상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 베네치아의 자유 공간
새로운 인간주의는 스스로 쌓은
자본과 욕망에서 독립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실크로드는 문(文)과 물(物)의 양방로(兩方路)입니다 / 21세기의 실크로드
척박한 삶은 온몸을 울리는 맥박처럼 우리를 깨닫게 하는 경종입니다 / 사마 춤과 카파도키아
가난은 아름다움을 묻어 버리는 어둠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빛이 되기도 합니다 / 인도의 얼굴
우리는 누군가의 생(生)을 잇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생으로
이어집니다 / 보리수 그늘에서
밤이 깊으면 별은 더욱 빛납니다 / 히말라야의 산기슭에서
새로운 양식은 멀고 불편한 땅에서
창조됩니다 / 하노이의 21세기 경영
달리는 수레 위에는 공자(孔子)가 없습니다 / 새로운 도시, 가나자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 양쯔 강의 물결
어두운 밤을 지키는 사람들이 새로운 태양을 띄워 올립니다 / 태산의
일출을 기다리며
출판사 리뷰
21세기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을(乙)의 비애, 헬조선, 3포를 넘어 5포세대 등의 용어가 회자될 정도로 격차와 ‘각자도생’의 구호가 넘치고
있다. 정치·사회·경제·문화·이념 등의 갈등을 공존의 논리가 아닌 ‘갑’의 일방적인 강제로 해결 지으려 한다. 이런 첨예한 사회 모순들을 살피며
신영복 선생이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강조한 ‘공존과 연대, 그리고 새로운 인간주의’라는 메시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와
닿는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라는 부드러운 언어는 ‘오만한’ 강자의 지배 논리에 맞서 ‘겸손과
공존’의 원리를 지키고, ‘비정한’ 자본의 논리에 맞서 ‘인간의 논리’를 지키자는 뜻일 터이다. 여기에는 더불어 함께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연대하는 ‘관계론’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이 책에서 선생이 끊임없이 되짚는 ‘성찰’과 ‘모색’의 태도는 21세기에도 변함없이 응답해야 할
우리들의 철학이자 함께 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무엇이 진정 강하고, 진정 올바른 것일까?
“나무들이 모여 우람한
역사의 숲을 만듭니다.”
신영복 선생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향해 출항한 곳인 스페인 우엘바에서 시작하여 유럽과 남미를 거쳐
중국의 태산에서 여정을 마치기까지 전 세계의 역사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느낀 감회를, 마치 ‘당신에게’ 엽서를 보내듯 편지 형식으로 써내려갔다.
로마, 베이징, 모스크바, 아테네, 이스탄불 등 세계의 역사 도시들을 찾아 그 도시들이 품은 콜로세움, 만리장성, 크렘린 궁전, 아크로폴리스,
소피아 성당 등 거대한 유적들을 돌아보며 그 압도적인 규모에도 경탄하지만 선생의 시선은 우리가 외면하기 쉬운 그 장소와 기억의 이면으로
향한다.
인류의 역사는 강자의 논리로 점철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수많은 생명의 희생과 피땀이 있었다. 선생은 만리장성과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그것을 쌓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먼저 생각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에는 강자의 논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이 발견한 땅은
결코 신대륙이 아니다. 콜럼버스 이후 코르테스로 대표되는 유럽의 세력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 자행한 무수한 살육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중국의 만리장성은 다만 그것이 공격용이 아닌 방어 목적이었다는 데서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이 여전히 장성의 아래에 묻혀 있다. 선생은 이처럼 패권주의와 물질주의 아래 함몰되어 온 희생의 의미와 가치를 섬세히 사색한다.
선생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담아 보여 주고 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본에 있어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과거의 청산이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완고한 현실의
구조를 허물기 위해서는 우리가 쌓아 온 ‘생각의 성(城)’을 벗어날 뿐 아니라 그 성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행이 그러한 ‘겸손한 만남’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뜻 깊은 전언을, 이처럼 정직하고 나직하게 전하는 기행문은 드물고 귀할 것이다.
‘21세기 자본’의
오만과 무지에 대한 성찰,
그리고 ‘새로운 인간주의’의 모색
그리하여 넓은 세계를 여행하며 선생이 확인한 것은
자본주의의 오만과 무지, 그리고 반인간주의이다. 매일 충족하고 싶어 하는 “무한한 허영의 욕망”과 연결됨으로써 그 어느 누구도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선생은 선진 자본이 머리가 되고 중진 자본이 몸이 되고 그보다 못한 자본이 발이 되는 구조, 즉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 체제와 불평등 분업의 상호 침투라는 이중 구조를 직시한다.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동(同)의 논리로 강요되는 강자의 지배 논리는 비단
정치·경제적인 지배력을 장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과거 유적의 미학까지도 재구성함으로써 사람들의 심성마저 획일화하고 있다는 것. 그러한 강자의
지배 논리로는 지속가능한 삶이 어렵다고 토로하며, 선생은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새로운 인간주의’를 제시한다.
새로운
인간주의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궁핍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인간이 쌓아 놓은 자본으로부터, 그리고 무한한 허영의
욕망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리스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달려온 셈입니다. 그 먼 길을 등
뒤에 지고 다시 더욱 먼 길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인지도 모릅니다. _본문에서
홍윤기 동국대 교수는 선생의 이러한
‘새로운 인간주의’에 대해, “‘인간의 자기완성’이라는 고전적 인간주의와 ‘인간다운 인간의 자기실현’이라는 근대적 인간주의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연대에 기초한 자연적 인간의 지향’”이라고 논한 바 있다.(『신영복 함께읽기』, ?지상의 인연, 인간의 연대―다시 읽는
『더불어숲』?에서)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는 공명의 메아리는 “가장 정직한 사랑의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으로 퍼지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나아가면서 길을 만드는 일”이 되는 것이다.
금융 위기와 전 지구적 테러 위협으로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위태롭고, 일방적인 신자유주의의 패권과 획일화의 균열이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엇이 강한 것이며 무엇이 약한 것인가.” 무엇을 함께
공부하고 꿈꿀까? 다른 꿈이 간절한 ‘문명의 가을’에 자본의 환상에서 깨어나는 ‘깸’이 먼저임을 전하는 『더불어숲』은 오래도록 우리에게 독서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세계화는 인간의 논리가 아닌 자본의 논리입니다.
더불어 손잡고 자본의 논리에 저항하는 진지陣地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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