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문학총서-06]『시와 삶의 노트』: 에세이
-구상/ 홍성사
시를 매개로 시인의 다양한 경험과 단상을 따라가는 여정
그가 바라본 세상에는 시가 아닌 것이 정녕 하나도 없었다. 이 책은 시인이 생전에 발표한 에세이 가운데 시와 관련한 것들을 모았다. 응향 필화사건을 비롯하여 시인이 지나온 인생의 굵직한 사건과 소소한 일상에 스며 있는 자취가 묻어난다. 시가 어떻게 우리 삶을 일깨우는 활력소가 되며, 우리가 왜 시를 떠나서는 참될 수 없는지 갈파한다. 또 문학을 하는 이유, 시를 쓰는 목적과 방법, 문학적 자기 성찰에 대한 진솔한 고백을 보며 우리는 그가 추구한 시의 좌표를 확인할 수 있다.
작가 소개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造詣가 깊어 존재론적·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했다.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
사회 참여
1919년 서울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구상준具常俊. 그가 네 살 때 그의 가족은 함경남도 원산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독일계 신부들이 원산에 교구를 개설하면서 교육 사업을 그의 아버지에게 맡겼던 것이다. 보통학교를 마친 그는 형처럼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의 가슴에서 들끓고 있는 일제와 신神과 제도에 대한 저항 의식 때문이었다. 결국 시인은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리고 일본대학 종교과에 입학하여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 각 종교의 철학적 근거를 배우며 정신적 근원을 다져 나갔다. 귀국 후 활발히 집필 및 사회 활동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이 광복 1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시집 〈응향凝香〉에 실린 시 세편이 문제가 되면서 ‘응향필화사건’에 휘말렸다. 이 사건으로 구상 시인은 자유를 찾아 월남을 감행했다.
그 후 구상 시인은 1949년 초에는 〈연합신문〉 문화부장을, 6·25 전쟁 중에는 국방부 기관지인 〈승리일보〉를 만들며 종군했다. 1952년 전세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구상 시인은 영남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59년 이른바 ‘레이더 사건’을 겪은 이후 일체의 사회적 직책을 맡지 않았다. 대신 그가 선택한 길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효성여자대학,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하와이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이때 역시 시인은 일체의 보직을 사양했다.
구도자의 길
구상 시인은 1953년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왜관으로 내려가 1974년까지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낙동강이 바라다 보이는 왜관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구상시인의 시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두 아들을 일찍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큰아들 구홍은 1997년 9월 10일 폐렴으로, 둘째 아들 구성은 1987년 폐결핵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1993년에는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었던 아내 또한 타계했다. 남은 가족으로는 소설을 쓰는 딸 자명 씨와 작은 아들이 남긴 유일한 혈육인 손녀가 있다.
노벨문학상 본선 심사에 두 번씩이나 올랐던 구상 시인의 시는 프랑스·영국·독일·스웨덴·일본·이탈리아어로 번역·출판돼 널리 읽히고 있다. 1997년에는 영국 옥스퍼드 출판부에서 펴낸 《신성한 영감-예수의 삶을 그린 세계의 시》에 그의 신앙시 4편이 실렸을 정도로 그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시를 쓸 때 기어綺語의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령言靈이 있으므로 참된 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묘하게 꾸며 겉과 속이 다른, 진실이 없는 말을 결코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버지”
구상 시인은 이른바 기인奇人들과의 교류로도 유명했다. 천재 화가 이중섭을 극진히 돌보았는가 하면 시인 공초 오상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선구이자 ‘어린이 헌장’의 기초자인 마해송을 비롯해 걸레스님 중광에 이르기까지 그와 인간적으로 따뜻한 관계를 맺었던 기인들이 수없이 많다. 구상 시인은 박삼중 스님이 벌이는 사형수 돕기에도 적극적이었다. 그중 한 명을 양아들로 삼고 옥바라지를 하는 한편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는데, 결국 사형수는 7년 만에 무기로 감형된 데 이어 15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만이 아니라 구상 시인에게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 이들이 많다. 이처럼 그의 품은 넓고도 따스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판 1억원을 이웃을 위해 스스럼없이 내놓은 것을 비롯해 투병 중에도 장애우 문학지 〈솟대문학〉에 그동안 아껴 두었던 2억원을 쾌척하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이처럼 성자聖子와도 같은 삶을 살았던 구상 시인은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된 데다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힘들게 병마와 싸우다가 끝내 2004년 5월 11일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이 기다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造詣)가 깊어 존재론적ㆍ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한 시인.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이다.
목차
제1부 잠 못 이루는 밤에
우주인과 하모니카 / 초토(焦土)의 3경(三景) / 적군묘지(敵軍墓地) / 그리스도 폴의 강 / 뿌리의 공덕(功德) / 인간 삶의 바탕 / 잠 못 이루는 밤에 / 꽃과 주사약 / 실향(失鄕) 바다 이야기 / 하와이 풍정(風情) / 수치심(羞恥心)이라는 명제 / 삶의 명암과 고락 / 참된 행복 / 결혼생활의 비결
제2부 사람다운 삶
홀로와 더불어 / 삶의 보람 / 생각하는 삶 / 삶의 리듬 / 신령한 새싹을 가꾸며 / 오늘서부터 영원을 / 인간의 유한성 / 소외와 불안 / 존재의 신비 / 사람다운 삶 / 들풀과 선물 / 고미술품과 현대시 / 이 참변 속에서
제3부 나의 시의 좌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왜 시를 쓰는가? / 나의 문학적 자화상 / 시집 《응향(凝香)》 필화사건 전말기(顚末記) / 나의 시의 정진도(精進道) / 나의 시작 태도(詩作態度) / 나의 시의 좌표 / 옥중모일(獄中某日) / 매시득주(賣詩得酒) / 여백의 계절 / 새해와 새 삶 / 강, 나의 회심의 일터 / 한가위 어버이 생각
제4부 시의 허구(虛構)와 진실
현대시와 난해(難解) / 사회참여와 우리시 / 시와 현대 문제의식 / 시와 실재인식(實在認識) / 오늘의 우리시와 시인 / 현대문명 속에서의 시의 기능 / 우리시의 두 가지 통념 / 시심(詩心)이라는 것 / 시의 허구(虛構)와 진실 / 우리시에 나타난 6·25 / 언어의 표상과 실재
제5부 동서의 명시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 로버트 브라우닝의 〈때는 봄〉 / 샤를르 보들레르의 〈유쾌한 사자(死者)〉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장미의 내부〉 / 왕지환의 〈관작루에 올라〉 / 미요시 다쯔지의 〈마을 1·2〉 / 타고르의 〈나의 생명의 생명이신 이여〉 / 에밀리 디킨슨의 〈내가 만일 한 마음의……〉 / 푸시킨의 〈작은 새〉 / 예이츠의 〈흥, 그래서〉 / 괴테의 〈시의 요소〉 / 단테의 〈신생(新生)〉 시편 중에서
책 속으로
여기에 한데 묶은 것은 나의 글들 중 나의 시(詩)를 비롯한 국내의 시의 음미라든가, 시를 곁들인 인생론이라든가, 또는 시에 대한 나의 소견 등 그 모두가 시가 깃들인 에세이들이다. 물론 이런 글을 내가 한꺼번에 의도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40여 년의 문필생활을 해 오는 동안 시 이외의 청탁 원고나, 강단이나, 공중 강연을 통해 자연히 쌓여진 시인이라는 직분(職分)의 발로로서, 말하자면 시가 왜, 또는 어떻게 우리 삶의 예지의 원천이 되고 활력소가 되는가를 제시하고 증거해 보인 자취들이라고나 하겠다.
물질주의와 기술만능의 세상살이 속에서 시라는 것이 인간 실생활에는 그야말로 무관한 일부 지식인들의 정신이나 언어의 유희로밖에 보여지지 않거나 청소년들의 몽환제(夢幻劑)로 여겨질지 모르나 우리의 삶과 꿈이 시를 떠나서는 참될 수가 없고 그 보람과 기쁨을 맛볼 수가 없음을 이 변변치 않은 나의 글들이 일깨워 주었으면 하는 주제넘은 바람을 갖는다. --- ‘책머리에’ 중에서
시 작품은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무정란(無精卵)과 수정란(受精卵)으로―말재주만으로 씌어진 무정란의 시는 그 자체가 이미 생명력을 잃고 있지만, 정혼(精魂)을 기울여 쓴 수정란의 시는 우열은 차치하고라도 그 나름대로 독자들에게 새 생명을 부화(孵化)시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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