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
오태환
1.
엎드려서 울고 있다
낮게 내려 앉은 대마도의 하늘
성긴 눈발, 춥게
뿌리고 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서릿발 같은 바람소리만
어지럽게 쌓이는
나라의 산하
불끈 쥔 두 주먹이 붉은
얼굴을 감춰서
설악같은 울음이 가려지겠느냐
파도같은 분노가
그만 가려지겠느냐.
어둡게 쓰러지며 울고 있다.
희디 흰 도포자락
맑게 날리며
성긴 눈발, 뿌리고 있다.
눈감고 부르는
사랑이 무심한 시대에
하염없이 하염없이.
2.
바다가 보이는 곳
한 채의 유림이 춥게
눈발에 젖어 있다.
희고 작은 물새 하나가
끌고 가는 을사
이후의 정적
너무 크고 맑구나.
서럽게
서럽게 황사마다 사직의
흰 뼈를 묻고
일어서는 낫, 곡괭이의
함성이 들린다
불길 타는 순창의 하늘
말발굽 소리의
눈발, 희미하게 날린다
문득 돌아다 보아
무심한 이역의 들판
거칠게 대숲 쓰러지는
얼굴이 더 이상
서책도 필묵도 아닌데
자주 찬 바람이 일고 있다.
몇 닢, 눈발을 따라.
3.
그냥 한이 되고
얼마를 더 용서하고
이 이상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려야 하랴.
자꾸만 하늘빛은
낮은 곳으로 모여들고
뇌성같은 마음
다 하지 못한 난세의 꿈은
그냥 한이 되고
물살이 되고 만 것을
왜 저리 눈발은 화사한지.
지척마다 희게
몰려서 날으는지.
적막에 이르는
깨끗한 두 눈알이 남아서
적막에 이르는
바닷길은 너무나 멀다.
조금씩 세상의 저녁은
어두워지고
푸르고 큰 바다는 저렇게 잔잔한데.
무정함도 간절함도
없이 저렇게 조용한데.
- 오태환 「최익현」, (198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오태환 시인
서울 출생으로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에 재학중인 1984년 신춘문예사상 최초로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두개의 일간지에 같은 해에 동시에 당선되었다. .시집 『북한산』 『수화(手話)』 『별빛들을 쓰다』 『복사꽃, 천지간의 우수리』, 시론집 『미당 시의 산경표 안에서 길을 찾다』 『경계의 시 읽기』등이 있다.
○당선소감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터 시를 썼다. 1학년때는 주로 짧은 서정시를 썼는데 역사공부를 하고부터 시의 길이도 길어지고 문장에도 힘이 붙게 된 것 같다. 인간이 아름답게 보이고 세상이 신기하게 보인다.
○심사평
매우 언어의 결구가 다부지고 느낌의 결이 고울 뿐 아니라 꽤 넉넉하게 버틸 줄 아는 언어 질서의 묘를 터득한 듯이 보인다. 자칫 설익은 현실의식에 얽매여 목청만 높이는 구태를 말끔히 벗고 가성의 잔재주를 스스로 경계한 채 하나의 진실을 의젓하게 진술해 나가는 자세가 믿음직스럽다. (심사위원: 권일송, 이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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