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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나의 시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금동원(琴東媛) 2017. 10. 13. 21:57

 

나의 시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가장 좋은 경우는

나의 시야, 네가 꼼꼼히 읽히고,

논평되고, 기억되는 것이란다.

 

그다음으로 좋은 경우는

그냥 읽히는 것이지.

 

세번째 가능성은

이제 막 완성 되었는데

잠시 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

 

네가 활용될 수 있는 네번째 가능성이 하나 더 남았으니

미처 쓰이지 않은 채 자취를 감추는 것,

흡족한 어조로 네 자신을 향해 뭐라고 웅얼대면서.

 

 

- 충분하다, ( 문학과 지성사, 2016)

 

 

 

  ○작가 소개

  폴란드 중서부의 작은 마을 쿠르니크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인 1931년 폴란드 옛 수도인 크라쿠프로 이주하여 2012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다.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폴란드어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했으나 중퇴했다. 1945년 『폴란드일보』에 시 「단어를 찾아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뒤, 첫 시집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부터 『여기』(2009)까지 모두 12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본질과 숙명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실존 철학과 시를 접목시킨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표현,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언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 적절한 우화와 패러독스 등을 동원한 완성도 높은 시로 ‘시단(詩壇)의 모차르트’라 불리며, 총 28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일 괴테 문학상, 독일 헤르더 문학상, 폴란드 펜클럽 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1996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타계 직후인 2012년 4월에 유고 시집 『충분하다』가 출간되었다

 

 

아이디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아이디어 하나가 내게 떠올랐다,

시구(詩句)를 위한? 아니면 시(詩)를 위한?

그래 좋아- 내가 말한다- 잠깐, 우리 얘기 좀 하자.

너에 관해 좀더 많은 걸 말해줘.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인다.

내가 말한다- 아, 그런 얘기였군. 흥미로운걸.

실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가 마음에 걸렸어.

하지만 이에 관해 시를 쓰라고? 안돼, 절대로.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인다.

내가 대답한다- 단지 네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야.

나의 재능과 능력을 과대평가 하는군.

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니까.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인다.

내가 말한다- 네가 틀렸어, 간결하고 함축적인 시를 쓰는 건

긴 시를 쓰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라고.

날 그만 좀 괴롭혀, 강요하지 말라고, 그래봤자 소용없다니까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인다.

알았어, 해볼께, 네가 그렇게 고집을 피우니까 말이야.

하지만 분명히 경고하는데,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장담할 수 없어.

나는 쓰고, 찢어버리고, 휴지통에 버린다.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인다.

내가 말한다-그래 네 말이 맞아. 다른 시인들도 얼마든지 있다고.

어떤 이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니까.

그들의 이름과 주소를 네게 줄게.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 마디를 속삭인다.

그래, 당연하지,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게 될거야.

우리는 졸작을 놓고도 서로 질투하니까.

하지만 이 경우는 말이야, 반드시...... 이러이러한 점을 갖고 있어야 할 듯......

   그러자 내 귀에 대고 몇마디를 속삭인다.

그래, 바로 그거, 네가 꼽은 그런 자질 말이야.

자, 그러니 이제 주제를 바꾸는 게 좋겠어.

커피 한잔할래?

 

그러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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