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청춘을 매혹시킨 열 명의 여성 작가들
-이화경저 | 행성B잎새
인생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힌트라도 주는 존재가 있다면 구원받는 기분일 것이다.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는 이화경 소설가가 자신이 힘들고 어려울 때 추동력이 되어 준 여성 작가 열 명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에세이다. “불쑥불쑥 치밀고 올라오는 불안과 채울 길 없는 결핍과 알 수 없는 갈망에 미칠 것 같았던” 서른 살에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삼십 세』를 읽고 위로받은 이야기, 글을 쓸 ‘자기만의 방’을 소유하기를 갈망했고, 다른 노동이 아니라 글을 쓰는 노동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시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통해 힘을 얻었던 이야기 등 삶의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앞서 산 ‘통 큰 언니이자 선배’들을 자신의 삶에 불러들여 뜨겁게 교감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삶의 심장부에 다다른 것처럼 치열하고 깊어 차라리 육성을 듣는 것에 더 가깝다.
○작가 소개
전남대학교 영문학과와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년간 인도 캘커타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1997년 《세계의 문학》에 「둥근잎나팔꽃」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소설집 『수화』, 장편소설 『나비를 태우는 강』, 비평집 『이상 문학에 나타난 주체와 욕망에 관한 연구』, 인도 동화 번역집 『그림자 개』 등이 있다.
○목차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에 함께하고, 함께 울다 13
한나 아렌트-착하고 성실하게 싹트는 ‘악의 평범성’을 통찰하다 33
로자 룩셈부르크-안일한 타협 대신 ‘지금, 여기’에서 혁명을 외치다 57
시몬 드 보부아르-독재적이고 완고한 가부장제에 틈을 내다 83
잉게보르크 바흐만-갈아엎어지는 성장통 ‘삼십 세’를 조명하다 113
버지니아 울프-‘집 안의 천사’를 죽이고 여자라는 ‘개인’을 부각하다 137
조르주 상드-그럼에도 사랑 앞에서 주저하지 않다 167
프랑수아즈 사강-자신이 파괴될지언정 매혹적인 것들을 향해 내달리다 193
실비아 플라스-‘유리 천장’을 뚫고 날아오르길 열망하다 217
제인 오스틴-여성 작가를 용인하지 않는 세상의 오만과 편견에 맞서다 241
○책 속으로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에 함께하고, 함께 울다
그녀는 온갖 허위에 대항해 직설적인 화법을 거침없이 구사했다. 우아한 척, 고상한 척, 잘난 척, 도덕적인 척, 윤리적인 척, 수많은 ‘척’을 일삼는 사람들과 권력을 생래적으로 거부했던 그녀는 화장발로 위장한 글쓰기를 일절 배격했다. 수전 손택은 자신의 글쓰기를 ‘투명성’이라고 지칭했지만, ‘척’과 ‘체’로 무장한 일부 보수주의적인 비평가들은 그녀에게 ‘문학계의 뚜쟁이’라는 악명을 붙여주었다. --- p.22
그녀는 무엇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 야만, 폭력, 빈곤, 차별, 테러리즘에 가슴 미어질 듯한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평생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라고 묻고 또 물었다. 그녀에게 지식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였다. 문학 밖의 세계와 거리를 두는 법을 몰랐던 그녀는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참여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실천했다. --- p.21
한나 아렌트-착하고 성실하게 싹트는 ‘악의 평범성’을 통찰하다
이데올로기적 맹신이나 악독한 동기가 한 인간을 악마로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음, 즉 무사유야말로 악마적인 심연에 쉽게 빠져들게 하는 것임을 한나 아렌트는 통찰했다. 악이 평범하다고? 그녀는 악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만 악한 일을 행한 인간이 ‘평범할 수’ 있다는 사실, ‘우리 안에 아이히만’이 존재한다는 진실, 악을 행할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숙고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구태의연한 인습과 타자에 대한 상상력의 결여가 제2의 아이히만을 탄생시킬 수 있으며, 무사유가 악과 연결될 수 있기에. --- p.53
로자 룩셈부르크-안일한 타협 대신 ‘지금, 여기’에서 혁명을 외치다
혁명에 대한 다이너마이트 같은 그녀의 열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자신의 관점에 대한 도저한 신념과 전투성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거물에게 아부하기에는 피가 너무나 젊었고, 권력을 잡기보다는 대의에 충실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정치 권력자들과 인맥을 쌓을 욕심이 없었기에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걸까. 언제나 이방인으로, 변방의 인물로, 경계인으로, 소수자인 여성으로 살았기에, 외려 무서운 게 없었던 걸까.
불완전하고 어설퍼도 지금 이 자리에서 시도하고, 깨지면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고통과 좌절 속에서도 더욱 거대하게 다시 일어나서 저항하는 뭇 인생들에 대한 격려이기도 했다.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전투 중인 길거리나 감옥에서 생을 마치기를 소망했다던 로자 룩셈부르크. 삶이 제시하는 그 모든 것 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를 원했던 그녀는 언제나 삶은 ‘여기’에 있다고 믿었으며, 그러기에 넘어지고 자빠진 지금 ‘여기’에서 벌떡 일어나 뛰고 춤추었다. 혁명의 붉은 장미꽃을 입에 물고. --- p.77~78
시몬 드 보부아르-독재적이고 완고한 가부장제에 틈을 내다
의존과 양육의 탯줄을 과감히 잘라낸 그녀는 주체적 삶을 온전히 전유專有하게 될 행보를 디뎠다. 제도와 규범에 구속되는 결혼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그녀답게 사르트르와 2년간의 계약을 맺는 것으로 부부 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이미 자신이 프린스 차밍이 아니라 두꺼비라는 것을 명확히 알았던 냉소적인 철학 천재 사르트르와의 계약은 철학적 고민과 세계관의 사적인 결론이었다. --- p.91
1949년 발표한 《제2의 성》은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으로 그녀의 명성을 떨치게 해주었다. 이 책은 프랑스 정부가 결혼한 여성들을 모두 직장에서 해고하거나, 아이 없는 여성들을 비난하고, 낙태와 피임을 불법화하는 현행 법안을 더욱 강화하면서 여성의 자율성을 한층 더 제한하는 엄중한 제도를 도입할 시기에 쓰였다. 이 책을 두고 교황청은 포르노그래피라고 혹평했고, 친구인 카뮈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초기 페미니즘적 비판과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분석이 결합된 독창적인 이 책의 개념은 단두 가지였다. 여성은 절대적 타자라는 것, 여성성은 구성된다는 것이었다. --- p.96~97
잉게보르크 바흐만-갈아엎어지는 성장통 ‘삼십 세’를 조명하다
작가는 무엇 때문에 쓰는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 그녀는 묻고 또 물었다. 그녀는 나쁜 언어에 대한 긴장과 싸움을 놓치지 않고 아름다운 언어, 새로운 언어라는 이상적 언어를 추구했다. 그녀에게 예술과 문학은 삶의 안위를 위한 진정제도, 그저 아름다운 대상을 창조하는 도구도 아니었다. 문학은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유토피아로 전진해야 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 p.121~122
유토피아란 실존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절박한 종말과 한계를 느낄 때 꿈꾸는 지향성이니까. 불가능이 있어야 가능을 강렬하게 욕망하니까. 타락한 기존 언어에 대한 절망이 있어야 새로운 언어를 갈구하니까. 그녀는 세상의 삼십 세를 향해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친다. 삼십 세여, 내 그대에게 말하노니 일어서서 걸으라. 삼십 세,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았으니. --- p.135
버지니아 울프-‘집 안의 천사’를 죽이고 여자라는 ‘개인’을 부각하다
그녀는 여성이 집 안의 천사를 죽이고, 남성의 이기주의와 싸우고,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에 익숙해지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눈치 보지 말고 말하고, 무엇보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말고 혼자서 가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 우리에게 기회는 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녀의 책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그저 의지로 이겨내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라는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내 성공을 본보기 삼아 너도 훌륭해지라는 훈계를 빙자한 자기과시용 책도 아니다. 그녀는 《자기만의 방》이 강연용 팸플릿이 아니라 투쟁서이자 여성의 독립선언서이길 원했다. --- p.155
그녀를 두고 후대는 ‘인간의 내부 의식을 탐사하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제시한 혁신가’, ‘실험적 모더니스트’, ‘페미니즘의 기수’, ‘페미니스트의 대모’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평가를 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언젠가 그녀가 일기장에 쓴 “나는 버지니아다. 글을 쓸 때 나는 단지 감각이 된다”는 문장으로 대답하지 않았을까. 그렇다. 그녀는 버지니아다. --- p.164~165
조르주 상드-그럼에도 사랑 앞에서 주저하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아무도 대신해서 살아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철저히 자유로운 주인으로 살고자 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남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에 상처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이들과 깨소금이 쏟아지는 고소함을 즐겼다. 타인의 비난과 질타에 연연하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서 연인과 친구와 아이들을 ‘서둘러’ 사랑하고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하는 데 정력을 바쳤다. 운명의 멍에를 기꺼이 짊어지되 예속되지 않았고, 세월의 고단함과 고통 속에서도 지성의 힘을 잃지 않았다. 생의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그녀는 기꺼이 혼자서 용기의 말을 타고 공주처럼 밤을 마중 나갔다. 그녀의 좌우명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였다. 그녀는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지나갈 것이다. 이것이 내 철학이다”며 침착하게 견뎌냈다. --- p.175
프랑수아즈 사강-자신이 파괴될지언정 매혹적인 것들을 향해 내달리다
그녀는 생존과 직결된 모든 시도에 수시로 존재를 맡기면서 죽음의 매혹을 즐기고, 세상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보란 듯이 도발하고 거역하면서 스릴 넘치게 살았다. 담배와 술, 도박과 스피드, 문학과 영화와 연극, 결혼과 이혼, 연애와 이별, 희극과 비극, 무분별과 광적인 방탕함, 성공과 좌절, 명예와 추락, 엄청난 인세 수입과 탕진. 이렇듯 사강은 인간 실존에 내재한 강렬한 본성을 남김없이 쏟으며 살았다.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아니며, 청춘은 너무나 덧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달은 그녀다운 생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컵 가장자리에 부서지는 미친 바다” 같은 사강의 삶, 어떤 바다보다거품이 많이 일고, 예측할 수 없고, 그래서 더 신선한 삶이다. --- p.198
그녀는 “자기 안의 무엇이 자기 밖의 무엇을 초월하는 그 스피드의 순간”에 도취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위험, 뜻밖의 사건, 무분별함 같은 것을 끊임없이 거부하는 현대사회를 비참한 사회라고 여겼다. “사람의 영혼에 깃든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사람의 몸뚱어리에 매겨진 가치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 이 계산적인 사회를 경멸했다. --- p.211
실비아 플라스-‘유리 천장’을 뚫고 날아오르길 열망하다
여성들의 권력과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여성 차별의 상징인 유리 천장Glass Ceiling은 벨 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바닥을 길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정치·경제·문화·비즈니스 등 각 분야의 최종 단계에 오르고자 할 때 끝내 부딪히고야 마는 유리 천장. 세상 어디에나 편재하고 군림하고 억압하는 숨은 신神, 곳곳에 숨어 있다가 튀어 오르려는 여성들을 위세와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무시무시한 신, 투명해서 안 보이고 안 보여서 더 무섭고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드는 가부장적 신, 유리 천장. 실비아 플라스는 벨 자와 유리 천장의 가부장적 신을 향해 외친다.
실비아는 세상의 온갖 벨 자에 갇힌 여성의 참혹한 실체를 소설을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여자라는 게 싫다”, “여자로 태어난 게 나의 끔찍스러운 비극이다”고 통곡하듯이 고백했던 실비아. 유독 여자에게만 벨 자가 더 견고하고 폭력적으로 덮어씌워지는 비극을 누구보다 절감했기에 실비아는 전 생애에 걸쳐 벨 자를 부수려고 애썼다. --- p.225
제인 오스틴-여성 작가를 용인하지 않는 세상의 오만과 편견에 맞서다
천재적인 글쓰기 재능이 있었지만 여자였기에 비통한 삶을 견뎌야 했고, 똑똑하지만 가난했기에 더부살이의 처지를 묵묵히 감수해야 했던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에서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애쓰지만 깊은 슬픔의 아릿한 맛이, 애써 쾌활한 척하지만 신랄한 풍자의 맛이 느껴진다.
제인 오스틴은 스스로를 일컬어, 감히 여류 작가가 되려고 하는 가장 무지하고 무식한 여성이라고 말했다. 다분히 냉소적이고 자조적인 발언이다. 이는 여자가 소설을 쓰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던 완고한 빅토리아 시대 문학계의 오만과 독자들의 편견을 향한 쓴소리이기도 했다. 배타적인 관습을 정면 돌파하는 대신 소설로 스며들어 균열을 내길 바랐던 그녀는 이전의 어느 여성 작가도 해내지 못했던 글을 써냄으로써 결국 리얼리즘의 봉우리에 올라섰다. --- p.246
제인은 단독 서재도 없이 가족 공동의 번잡한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써 내려간 첫 소설로 10파운드(지금 우리 돈으로 약 90만 원)를 벌었다. 오로지 명성을 위해서만 글을 쓸 뿐 글로 돈 벌 생각은 없노라고 고상하게 언니에게 말했지만, 10파운드는 작가로 살아갈 미래의 종잣돈이었다. 거실 문이 삐꺽거리는 소리만 들리면 쓰던 원고를 압지로 가려놓아야만 하는 불안한 글쓰기를 이어가면서도 창작의 붓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창작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아주 섬세한 붓으로 작업하는 2인치 너비의 작은 상아 조각”이라고 스스로 묘사했듯이, 그녀는 정밀한 세밀화의 화공처럼 글을 썼다.
--- p.248
○출판사 리뷰
시대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여성 작가 열 명을 호명하다
저자가 호명한 열 명의 작가는 누구인가.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시몬 드 보부아르, 잉게보르크 바흐만,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프랑수아즈 사강, 실비아 플라스, 제인 오스틴이다. 쟁쟁한 이들은 모두 시대의 아웃사이더였다.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 안에서 고분고분 갇혀 살지 않았던 ‘불온한’ 여성들이었다. 요구하고, 따져 묻고, 문제시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실천하면서 기존 시스템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 탓에 대부분 그녀들 삶은 녹록지 않았다. 실비아 플라스는 “여자로 태어난 게 나의 끔찍스러운 비극이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들은 의연하게 제 길을 갔다. 세상이 편견과 불합리, 인신공격, 중상모략, 노골적인 적대감, 야비한 뒷말과 근거 없는 소문 등으로 조롱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막아설 때도. 로자 룩셈부르크는 “나는 혼자다. 사람들은 나를 증오한다. 따라서 내가 옳다”며 당을 위해서는 척후병처럼 나서고, 노동자계급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았다. 국외자인 유대인이자 세계 내에 존재하는 아웃사이더이며, 정치적 참여를 가장 치열하게 했던 무국적자 한나 아렌트는 “세계는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전진한다”는 괴테의 말을 철저히 실천하며 전진한 지식인이었다.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통 큰’ 언니들의 뜨거운 격려와 응원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에서 조명한 열 명의 여성 작가는 지금 우리 시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독보적인 작가들을 이야기하려니 저자는 집필 과정이 녹록지 않았노라 털어놓는다.
이 책을 쓰는 동안에 대단한 열 분을 모시는 일이 녹록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글을 쓸 때면 엄살이 심해지고 징징거리게 되는 내가 꾹 참고 책상 앞에 앉아 있자니 등이 휠 것 같고 애간장이 탔다. 그런데도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 길은 애초에 없었다. 그들의 생애와 작품을 서사적 틀로 엮어내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갈팡질팡했다. 그들의 불꽃같은 영혼이 내 허약한 마음에 쾅 부딪히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 언제나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그들의 전투적인 생을 표현하기에는 나의 언어가 너무 무뎠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겨우겨우 더듬더듬 썼다. -「저자의 말」에서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에서 조명한 열 명의 작가는 자신의 삶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그녀들 삶은 늘 타인과 밖을 향해 있었다. 특히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들을 대변했다. 그녀들의 삶과 문학을 통해 위로받고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아울러 이 책은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등 거목 작가들의 삶과 대표 작품을 쉽고 흥미롭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인물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여성들에게 이 세상은 아직도 생지옥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저자 이화경
지금 이곳의 공기가 답답하고 뻑뻑하다고 느끼는 분들,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에 짓눌리고 버틸 여력이 없다고 여길 만큼 많이 지친 분들, 삶의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이 고장 났다고 여기는 분들, 다른 자아, 다른 영역, 다른 꿈, 다른 언어에 관심 많은 분들, 오지랖 넓고 다정하고 센 선배 언니들의 조언이 필요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 는 힘들 때마다 저자에게 힘이 되어 준 여성 작가 열 명의 삶과 필생의 역작을 조명한 책이다.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시몬 드 보부아르, 잉게보르크 바흐만,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프랑수아즈 사강, 실비아 플라스, 제인 오스틴이 그들이다. 이들은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불온한’ 여성들이자 ‘나쁜 페미니스트’였다. 이화경 저자는 인생의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이들에게서 용기와 지혜를 얻었다. 또한 자신이 받은 그 에너지를 후배 여성들에게 전해 주려 이 책을 썼다. 저자는 『열애를 읽는다』, 『화투 치는 고양이』,『꾼: 이야기 하나로 세상을 희롱한 조선의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을 썼고, 제6회 현진건문학상 등을 받았다.
열 명 다 여성 작가군요. 이유가 있는지요?
가장 큰 이유는 제가 바로 여성이고 글을 쓰는 작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의 모든 불편을 초인적으로 감내하며 작품을 써 냈던 제인 오스틴의 작가적 견인주의를 빌려서 힘을 내고, 글쓰기의 고단함과 일상의 노동이 섞이면서 체력과 창의성이 고갈되는 걸 느낄 때 ‘집 안의 천사’부터 죽이라던 버지니아 울프의 독기 어린 질책으로 버티곤 했습니다. 그 외에도 너무도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덟 분의 여성 작가를 통해 제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열 명의 작가 중 선생님께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를 뽑는다면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기보다는 영향을 받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말이 더 맞겠는데요. 바로 로자 룩셈부르크입니다. 책에서도 썼다시피 로자 룩셈부르크는 어린 시절에 장애를 겪습니다. 육체적 불구성과 그런 인해 생긴 아웃사이더적인 성정에 저는 무척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상처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고 불행하다고 여겨 모두에게 적대적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던 소도시에서 저질러졌던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과 맞물리면서 세상을 뒤집어엎을 혁명, 금지된 모든 것을 위반하고 과거와 결별하는 혁명을 갈망하던 때에 로자 룩셈부르크를 처음 알게 되었죠. 그녀는 언제나 실천의 현장에 있었고, 그 현장의 한복판에서 살고 죽었습니다.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투쟁 중인 길거리나 감옥에서 생을 마치기를 소망했죠. 그녀는 삶이 제시하는 그 모든 것 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를 갈망했습니다.
한 자 한 자 새기듯이 글을 써 내려간 느낌을 받았습니다. 깊이 교감한 것도 느껴지고요. 어떤 분을 얘기할 때 가장 힘드셨는지, 또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만과 편견』 의 작가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글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아주 섬세한 붓으로 작업하는 2인치 너비의 작은 상아 조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논리를 연마하기 위해 수도승처럼 글에 매달리고, 아침에는 냉수마찰을 해 가면서 혹독하고 날카롭게 펜을 벼렸습니다. 그분들의 섬세하고 강인하며 진실되고 치열한 글쓰기에 혹여 누가 되지는 않을지 문장마다 되짚어 보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 문장의 한계로 그분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송구스러움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실비아 플라스를 다룰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세상의 유리 벽 안에 갇힌 여성 실존의 위태롭고 참혹한 비극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보여 준 작가였기 때문입니다. 허위로 가득 찬 세상과 가부장제에 대한 냉소와 허무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문학적 완결성을 지향했던 모습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수전 손택, 한나 아렌트 등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는 분들의 삶을 쉽고 흥미롭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인물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각 인물들을 잘 조명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작가들의 주저작물을 선정한 다음에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텍스트들을 찾아 읽었습니다. 작가를 다룬 평전, 작가의 일기, 작가의 다른 저작물들, 작가와 긴밀하게 관련된 주변 인물들(부모, 형제, 친구, 애인, 동지, 적대자들), 편지들, 논문들, 시대적 상황에 대한 정보들도 최대한 구해서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울러 저의 삶과 연루된 지점들을 잇대면서 재구성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이곳의 공기가 답답하고 뻑뻑하다고 느끼는 분들,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에 짓눌리고 버틸 여력이 없다고 여길 만큼 많이 지친 분들, 삶의 방향을 잡아 주는 나침반이 고장 났다고 여기는 분들, 다른 자아, 다른 영역, 다른 꿈, 다른 언어에 관심 많은 분들, 오지랖 넓고 다정하고 센 선배 언니들의 조언이 필요한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작가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늘 타인과 세계를 향해 있었죠.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해야 잃지 않게 될까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냉대와 멸시를 받았던 경험들이 오히려 타인과 세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단련시키지 않았을까요. 무엇보다 언어를 통해 존재 증명을 하고 실존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했던 여성 작가들이기에 가부장제의 허위를 꿰뚫는 힘센 통찰력과 타인의 고통을 보듬는 따뜻한 지성과 연민, 생에 대한 웅숭깊은 시선을 갖게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다룬 분들 외에 요즘 선생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여성은 누구인지요?
저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성에겐 충분치 않으며, 아직도 생지옥이라고 여기며, 당당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생산하고 돈 벌고 싸우고 창조하고 진보하고 세계의 전체성과 미래의 무한 속에서 자기를 초월하는 인생을 살라며 같이 고민해 주고 등 떠밀어 주고 아파해 주는 여성들(선배, 친구, 동지, 후배)이 제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채널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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