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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금동원(琴東媛) 2018. 3. 13. 21:53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시선 『三南에서 내리는 눈』, (1975, 민음사 )

 

(작은노트)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읽노라면 대학교 1학년 때가 많이 생각난다. 한창 이 시를 읊조리고 노트에 필사하여 다니거나, 편지를 보낼 때 이 시 대목의 몇 줄을 꼭 인용하던 친구들이 많았다. 아마도 갓 신입생이 된 여대생 특유의 감성과 한창 사랑에 대한 환상(혹은 설렘)으로 충만하던 시절이였기 때문이리라.  ''내 그대를 생각함은 ~~~~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로 끝나면서  깊고 서늘한 그리움과 슬픈 여운을 남기던 이 시는 아직도 늙지 않은 채, 해가 지고 바람부는 일처럼 사소하게 우리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추억과 함께 걸어가는 친구처럼. (금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