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아서
정현종
너무 좋아서
나는 너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네 눈을 '눈'이라고 번역하고
네 얼굴을 '얼굴'이라고 번역하고
네 손을 '손'
네 가슴을 '가슴'
네 그림자를 '그림자'
그리고 네 기쁨을 '기쁨'이라 번역하고
네 슬픔을 '슬픔'
네가 있으면 '있다'고 하고
네가 없으면 '없다'고 하고
흘러 흘러
피는 '피'로
네가 문장의 처음을 열면
나는 끝없는 그속으로 들어가
인제는 날개의 하늘이 된 거기서
자유형 헤엄을 치는데,
알코올 함유량이
부드러운 40도쯤 되는
가령 '술집'은 문맥을 부드럽게 하느니
그리하여 단어를 섞어서
수수께끼를 만들기도 하는데
열쇠는 사랑(사량?)
오 추억이 삶보다 앞서가는
신명의 묘약!
너무 좋아서
나는 너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메아리와도 같은 숨쉬는 문장이여
내 죽음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으리
- 『정현종 시선집 1』, (문학과지성사, 1999)
비양도에서 바라본 제주도 본섬, 꽤 이국적인 풍경으로 카메라 렌즈에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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