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J.M 쿳시 /왕은철 역/ 동아일보사
저자는 단순한 문장과, 아름다운 문체, 폭발적인 힘을 통해 후기 식민주의와 식민주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그렇게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무거운 주제를 저자는 잘 짜여진 한 편의 스릴러와 같이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은 백인정권이 종식되고, 흑인에게 권력이 이양된 이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회이다. 백인만의 통치가 종말을 고하기는 했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회는 여전히 흑백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한 폭력이 만연한 사회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 냉소적인 대학교수와 그 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 소개
John Maxwell Coetzee,존 쿳시(194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우스터에서 출생. 남아프리카 네덜란드계 백인으로, 여러 나라 말로 글을 써왔다.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수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영국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기도 했다. 1965년 미국으로 건너가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3년여 동안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강의한 후 남아프리카로 돌아와 1984년부터 2002년까지 케이프타운 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정년퇴임 후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해 애들레이드 대학과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치밀한 구성, 풍부한 대화, 정확한 통찰력으로 서구 문명의 위선을 비판하고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파헤쳐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라는 평가를 받는 그는『마이클K의 삶과 세월』『추락』으로 한 작가에게 상을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와 불문율을 깨고 부커상을 두 번 수상하고 200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첫 작품은 『어둠의 땅들』(Dusklands)이다. 그 다음 작품은 『나라의 심장부』(In the heart of the Country)인데, 이 작품으로 남아프리카 최고의 문학상 및 CNA상을 수상했다.『야만인을 기다리며』(Waiting for the Barbarians)는 CNA상, 제프리 페이버 메모리얼상, 제임스 테잇 블랙 메모리얼상을 수상했다. 『마이클 K』(Life & Times of Michael K)로 1983년 부커상 및 프리 에트랑제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이후 『포우』(Foe), 『철의 시대』(Age of Iron), 『페테르부르크의 대가』(The Master of Petersburg), 『추락』(Disgrace) 등을 발표했으며, 1999년 『추락』으로 다시 한 번 부커상을 받음으로써 최초로 부커상을 2회 수상한 작가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Elizabeth Costello)로 1987년에는 예루살렘상을 수상했고, 1998년에는 라난 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을 통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같은 남아공 출신 작가 고디머나 브링크와는 다르게 그는 자신의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하찮고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소설을 '사유의 한 방식'으로 생각하며 인식의 지평 안에 있는 것은 어느 것이든 헤집어보고 회의하며 의심한다. 현재 남아공 케이프타운대 문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작품에는 선과 악, 진실과 허위, 쾌락과 고통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치밀한 탐구가 주조를 이루는데, 특정한 역사적 사실에 저자의 분신인 주인공을 과감히 밀어넣은 후 길어낸 내적 고백이기에 그의 사유는 더욱 빛이 난다. '아프리카너(Afrikaner,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정책을 법제화한 남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백인)'라는 출신배경이 함축하고 있듯이, 저자는 자신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혼란과 식민주의자들의 원죄 의식을 문학으로 형상화해온 작가이다.
대표작『마이클K』는 한 편의 훌륭한 시대소설이면서도 한 개인의 치열한 존재론적 몸짓을 보여주는 내면소설이다. 역사와 권력과 정치와 지배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정원'으로 표상하고 있으며, 그것은 또한 존재의 안식처를 상징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억압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를 꿈꾸는지에 대한 쿳시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는 변경을 통치하는 한 치안판사의 내적 고백을 통해 제국의 모순 뿐 아니라, 제국의 일원으로 봉사할 수 밖에 없는 판사 개인의 부조리를 묻고 있다. 쿳시는 이 책을 통해 '제국'이란 억압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자의 존재 여부에 상관 없이 타자를 만들어내고 조작된 정보를 유통시키며 끊임없이 '상상'속의 '야만인'을 재생산해 내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복잡한 문제에 휘말려들지 않으려 애쓰지만 종래엔 '정의'에 몸담고야 마는 치안판사의 행로를 통해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인간은 애초에 정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작품으로는『더스크랜즈』『나라의 심장부에서』『야만인을 기다리며』『페테르부르크의 대가』『포우』『철기시대』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몇편의 언어연구서, 문학연구서와『소년기』(Boyhood: Scenes from Provincial Life)와 『청년기』(Youth) 등 두 권의 회고록이 있다.
○줄거리
작품의 주인공인 50대 백인교수 데이비드 루리는 이혼남으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열정은 부족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낭만주의 시를 강의해오던 그는 제자 멜라니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충동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그 관계는 이후의 사건들을 암시하듯 시큼했다. 그는 학교에서 탄핵되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소환된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공개적으로 회개하라는 압력에는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결국 데이비드는 사직하고 자신의 딸 루시가 소유한, 흑인들이 사는 지역의 작은 농장으로 은거한다.
한동안 그는 딸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 속에서 자신의 불협화음투성이인 삶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루시의 가까운 이웃이 운영하는 동물보호소에서 죽기 직전의 개들을 보살피는 일을 돕거나 시장에서 전을 벌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균형 잡힌 시골 생활은 깨어지고 만다. 그와 루시는 흑인 강도에게 폭행을 당한다. 이에 분노하는 데이비드와 달리 루시는 흑인들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흑인사회에 머무는 대가로 받아들이는데...
○YES24 리뷰
류혜숙 ruru100@yes24.com
『추락』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번째 수상하게 된 작가 존 쿳시. 그를 아는 국내 독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남아공 출신의 작가인 쿳시는 지난 83년 『마이클 케이의 삶과 세월』로 처음 '부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세계적인 문학상을 휩쓸고 있는 정상의 작가이지만, 국내에서는 문예지 등에 몇 번 소개된 것이 전부일 뿐 장편소설로는 『추락』이 국내 독자들과 처음 만나는 셈이다.
"철저한 자기절제로 감상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평을 받는 그는 자신의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대중 앞에 나서길 극도로 꺼리는 은둔의 작가이기도 하다. 두 번에 걸친 부커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인데, 대신 "문학상이 갖고 있는 상업성이 싫다"는 짤막한 메시지를 수상소감으로 밝힌 바 있다.
이 소설은 냉소적인 백인 대학교수와 아프리카의 땅을 사랑하는 그의 딸이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작품을 읽다보면 한 가지 독특한 점이 발견되는데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현재형시제가 쓰인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극히 단문을 사용하여 한 문장이 두 줄을 넘기가 힘들다. 그러나 감정을 철저히 배제해 선택한 단어 하나 하나가 갖는 힘은 놀라울 정도로 담백하고 또한 강렬하다. 쿳시는 가장 쉬운 문체를 사용하면서도 가장 절실하게 마음에 와 닿는 진실을 말하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인 것이다. 특히 제자와의 스캔들로 징계되는 교수, 타인의 딸에게 가한 상처가 대를 이어 자신의 딸에게 몇 배로 되돌아오는 상황, 또한 교수가 구상하는 오페라의 바이런에 얽힌 일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멋진 플롯을 이루어 낸다.
정렬적이지는 않지만 강렬한 욕구를 지닌 데이비드 로리 교수는 '이 나라의 싫증난 젊은이에게 drink와 drink up, burned와 burnt의 차이'를 설명하며 세월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그는 젊고 아름다운 자신의 제자에게 빠져들고 충동적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 같은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며 결국 교수직을 박탈당한다. 이 사건은 후에 그의 딸 로리가 겪게 되는 강간사건과 일정한 축을 이루며 데이비드가 추락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러한 데이비드의 추락 과정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며, 이것은 여전히 흑백갈등이 잔존하는 남아공의 현실과 맞물려 있다. 교수의 딸인 로리는 흑인들이 모여 사는 시골 농장에 고립된 백인이라는 이유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작가는 이를 통해 수백 년간 지속되어 온 흑백갈등이 단순한 정권의 양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흑인들이 그녀를 강간하며 내보이는 원한과 증오는 남아공 흑인들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부녀가 느끼는 공포와 위기의식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 남아공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농장을 떠나라는 데이비드의 권유 앞에 로리는 해결되지 않는 폭력에의 노출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그들의 땅에 사는 대가로 담담히 받아들이며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아빠, 이건 어디까지나 제 문제고 제 인생이에요. 제가 가는 길은 잘못된 길일지 몰라요. 하지만 제가 농장을 떠나면 저는 패배한 것이 돼요. 저는 언제까지나 어린애로 살수 없어요. 아버지가 언제까지나 아버지일 수 없듯이 말이에요."
결국 자신의 땅을 전부 흑인들에게 넘겨주고 강간의 흔적이 남긴 아이을 낳으면서도 그녀는 완강하다. 유죄는 인정하되 참회는 할 수 없다는 데이비드의 고집을 꼭 닮은 그의 딸 로리는 그가 타인의 딸에게 가한 고통을 몇 곱절로 되돌려 받으면서도 어설픈 화해나 비겁한 도피보다는 철저한 체념을 선택한다. 이러한 루리의 결심은 마치 남아공의 현실도 수많은 고통과 상처의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듯 처절하게 다가온다.
쿳시는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결국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떠한 평가도 내리지 않고 어떠한 가능성도 암시하지 않는다. 그가 사용하는 현재형 문장은 바로 이러한 열려 있는 가능성의 표현이고, 즉흥적이고 불안한 현실의 반영이다. 또한 통속적인 소재를 통해 정치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끌어내는 솜씨의 정교함과 압축된 현실 반영, 상징적 결말은 머리 속에 망치를 내리치는 듯한 충격을 준다.
왜 부커상의 불문율을 깨고 한 작가에게 두 번씩이나 수여되었는지, 왜 세계 유수의 평론가들이 『추락』을 "정상에 오른 작가가 쓴, 음악이 없는 미니오페라"라고 격찬하였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출판사 리뷰
금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선정이유를, “쿳시는 등 주요 작품을 통해 현실 밖에 선 사람이 놀랍게 현실에 관여하게 되는 양상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해 왔다. 쿳시의 작품은 정교한 구성과 풍부한 화법으로 잔인한 인종주의와 서구 문명의 위선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진지하게 의심해 왔다.”고 밝히고 있다. 100여 년 노벨문학상 역사 중에서도 우뚝선 작가의 대표작이 바로 이 <추락>이다.
쿳시에게 두 번째 부커상을 안겨주기도 한 <추락>은 그의 최고작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무대로 흑백 간의 갈등과 폭력의 원인을 탐구한 작품으로, 식민지와 후기 식민주의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소설들은 남아공 사람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한 오라기의 감상도 없이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한 눈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가 존재의 중추신경을 건드리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진실을 얘기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라고 역자 왕은철 교수는 평가하였다.
『추락』은 냉소적인 백인 대학교수와 아프리카의 땅을 사랑하는 딸이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추락>은 남아프리카에서 백인 지배가 종식된 이후, 새로운 환경이 제공하는 공포에 맞서 자신과 딸을 방어하려는 대학교수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내용
작품의 주인공인 50대 백인교수 데이비드 루리는 이혼남으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나 열정은 부족한 인물이다. 대학에서 낭만주의 시를 강의해오던 그는 제자 멜라니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충동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그 관계는 이후의 사건들을 암시하듯 시큼했다. 그는 학교에서 탄핵되고, 진상조사위원회에 소환된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공개적으로 회개하라는 압력에는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결국 데이비드는 사직하고 자신의 딸 루시가 소유한, 흑인들이 사는 지역의 작은 농장으로 은거한다.
한동안 그는 딸의 영향을 받으며 자연 속에서 자신의 불협화음투성이인 삶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루시의 가까운 이웃이 운영하는 동물보호소에서 죽기 직전의 개들을 보살피는 일을 돕거나 시장에서 전을 벌리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균형 잡힌 시골 생활은 깨어지고 만다. 그와 루시는 흑인 강도에게 폭행을 당한다. 이에 분노하는 데이비드와 달리 루시는 흑인들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흑인사회에 머무는 대가로 받아들이는데…….
이 소설은 백인정권이 종식되고 흑인에게 정권이 이양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무대다.
그러나 수백 년에 걸쳐 진행돼온 백인 식민주의의 잔재는 여전하고, 이는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흑백간의 갈등과 폭력의 원인을 제공한다. 남아프리카는 지금 그러한 폭력의 와중에 있다. 데이비드와 루시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어쩌면 대다수 백인들이 느낌직한 것이며, 페트루스와 흑인강도들이 백인들에게 느끼는 적대감은 대다수 흑인들의 그것이다. 결국 쿳시는 식민주의와 후기식민주의의 문제를 소설의 중심에 놓고 있다. 쿳시의 소설들이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논의에서 끊임없이 논의되는 것은 그런 문제점들을 심오하게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쿳시는 단순한 문장을 주로 사용한다.
때로 형용사나 부사만 달랑 있는 불완전한 문장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거칠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가 언제나 완전한 문장을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생각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번역자 왕은철씨는 “문체의 아름다움과 폭발적인 힘을 음미하면서 다소 천천히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현재형 문장의 의미(NYT북매거진 기사 인용)
“『추락』은 현재 시제로 쓰여져 있고, 『추락』이라는 제목은 아직도 그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물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끝에 이르러도, 그들의 문제점들과 가능성들은 해결되지 않고 완결되지 않은 채, 아직도 열려 있다.
이 소설은 현재시제의 활용 그 자체가 소설 전체의 구조와 형식이 되기에 충분한 몇 안 되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이 소설은 완화되지 않는 일련의 끔찍한 순간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추락』은 앞서 발표된 쿳시의 소설들과 다르게 폐소공포증적 소설도 아니고 우울한 소설도 아니다. 소설의 문법은 사건과 놀라움을 아름답고 차원높게 끌어올린다.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운명은,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의 운명은 결정되어진 게 아니라 즉흥적인 것처럼 보인다….”
번역에 원어를 남겨둔 부분은 독자들에게 원 소설의 묘미를 조금이나마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 소설은 영어로 된 소설인데, 주인공 루리 교수는 종종 영어가 아니라 라틴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다른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한다. 그의 현학적인 측면과 지적인 오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가 아니라 네덜란드계 백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이거나, 인용구절, 생소한 단어 등도 원어를 첨가했다.
*이 소설의 플롯을 받쳐주는 것 가운데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일화가 있다. 바이런은 재능을 갖춘 데다 미남이어서 숱한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쿳시는 그 가운데 처제와의 사이에서 난 딸 알레그라, 그 뒤에 시작된 백작부인 테레사와의 사랑을 이 소설에 등장시킨다. 알레그라는 수녀원에서 자라다 다섯 살 때 열병에 걸려 죽었다. 테레사와의 관계는 비교적 길었으나 안정적인 가정생활에 염증을 내기 시작한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뛰어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루리는 바이런의 삶에서 자신의 삶과의 유사성을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쓰면서 황량한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바이런과 그의 딸 알레그라와의 관계는 데이비드와 그의 딸 루시의 관계로, 바이런과 그의 애인 테레사의 관계는 데이비드와 그의 애인 멜라니의 관계로 대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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