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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금동원(琴東媛) 2019. 4. 27. 22:39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저/김화영 역  | 현대문학

 

 

 

  걷기에 대한 여느 말랑말랑 수필집이 아니다.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진지하며 또 깊다. 사회학전공 교수인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설득하고 있다. 걷기라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이 이렇게나 넓고 또 다양하였을 줄이야. 모든 책들이 그렇겠지만, 이 책 역시 우리가 가까이서 흔히 보던 것들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또 변화시킨다

 

 

 

○작가 소개

 

*다비드 르 브르통 (David Le Breton)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다. ‘몸’의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몸과 사회》, 《몸과 현대성의 인류학》, 《고통의 인류학》, 《몸의 사회학》 등을 썼다. 2002년에 출간된 《걷기예찬》은 지금까지도 걷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역자:김화영

문학평론가이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42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안목과 유려한 문체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고려대학교 불문학과에서 3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쳤다. 개성적인 글쓰기와 유려한 번역, 어느 유파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으로 우리 문학계와 지성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했고,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책 속으로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새로운 환희로 바꾸어놓는 고즈넉한 방법이다 ... 걷기는 어떤 정신상태, 세계 앞에서의 행복한 겸손, 현대의 기술과 이동수단들에 대한 무관심, 사물에 대한 상대성의 감각을 전제로 한다. --- P21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리저리 걷다보면 자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가 생기게 되기 때문만은 아니라 걷는 것에 의해서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트이고 추억들이 해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걷는 것은 죽음, 향수, 슬픔과 그리 멀지 않다.(피에스 상소 - 풍경의 변주) 길을 걷는 것은 때로 잊었던 기억을 다시 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 p.255
 
  걷는다는 것은 지극히 본질적인 것에만 이 세계를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지고 가는 짐은 얼마 안 되는 옷가지, 그릇,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땔감, 방향을 가늠하는 도구, 양식, 혹은 무기, 그리고 물론 약간의 책 등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상의 군더더기는 괴로움과 땀과 짜증을 가져올 뿐이다. 걷는 것은 헐벗음의 훈련이다. 걷기는 인간을 세계와 정대면하게 만든다. 소로는 산책 sauntering 이라는 말의 어원을 근거로 걷는 기술은 상징적으로 성스러운 땅에 도달하자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길의 자력에 발을 맡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마치 강물이 구불구불 흘러가긴 하지만 그렇게 흐르는 동안 줄곧 고집스럽게 바다로 가는 가장 짧은 지름길을 찾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걷기는 시선을 그 본래의 조건에서 해방시켜 공간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 속으로 난 길을 찾아가게 한다.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 외면의 지리학의 내면의 지리학과 하나가 되면서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평범한 사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킨다
--- pp.250-251
 

 

 

  ○출판사 리뷰

 

  걷기의 즐거움, 몸의 자유로운 감각에로의 초대

《걷기예찬》은 제어장치 없이 돌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제동을 걸고, 몸의 의미를 본래대로 되돌려놓고 있는 책이다. 다른 '걷기'에 관한 책들과 구별되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걷기를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초고속광통신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현대사회 속에서 몸이란 그러한 장치들을 보조하는 수단, 혹은 군더더기로 전락하고 있다. 누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대낮의 도심 속을 느긋하게 걸어간다면 그는 할일 없는 사람, 팔자 좋은 사람이란 오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걷기'만큼 삶의 불안과 고민을 해소하고 정신적으로 평온함을 주는 대체물도 없다. 한걸음씩 내딛는 순간에 느껴지는 몸의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 정신은 더 넓은 세계로 걸어나간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로 시작되고 있는 서두는 걷기에 대한 저자의 철학을 잘 집약하고 있다. 이 책에서 걷는다는 것은 몸으로 걷는다는 것을 뜻하며, 몸은 정신과 합일된 몸을 지칭하고 있다. 때문에 문득문득 보여주고 있는 동양적인 존재론이 낯설지 않다. 영혼의 구원에 가까운 길 떠남을 저자는 다음처럼 적고 있다. '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서,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서,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우리의 생활 터전이 도시화될수록 개인은, 몸은 소외된다. 지금 당장 문을 열고 거리로 나서보라. 끊임없이 밀리는 자동차와 사람들, 그리고 온갖 통제할 수 없는 소음들. 보통의 경우, 걷기란 일에 필요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한 걷기, 즉 노동의 연장선일 따름이다. 게다가 걷다가 지쳐도 마땅히 앉을 곳이 없는 비인간적인 길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길을 나서는 행위는 '저항'내지는 '모험'에 가까운 것이 되었다. 즉, 걷기란 '미친 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현대성에 대한 도전이며, 개인적 존재의 확인인 동시에 '승리'의 보증이 된다.

  저자는 '몸'과 '걷기'의 중요성과 행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걷기의 즐거움 못지않게 읽기의 즐거움에도 감각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깊은 인식이 배어있는 행간,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초대하고 있는 다양한 텍스트는 예사로운 에세이를 넘어서게 만든다. 우리는 이 책의 페이지들을 산책하면서 장 자크 루소, 피에르 상소, 랭보, 패트릭 리 퍼모, 스티븐슨, 그리고 일본 하이쿠의 대가 바쇼 등, 훌륭한 여행가들을 만나 한동안 길동무할 수 있을 것이다.

 

 

 

  ○YES24 리뷰

 

 ■몸을 잃은 현대인에게 바치는 걷기의 인간학
  허순용(sellavy@yes24.com)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몸을 잃은 세대’이다. 자동차가 다리를 앗아간 지는 오래되었고 이제 컴퓨터가 두뇌마저 앗아갈 운명이다. 자신이 만든 온갖 첨단 기기와 상징 체계에 묶인 현대인은 삶이 왜 이렇게 힘들고 피곤하고 버거운지 묻는다. 몸을 움직일 일이 현저히 줄어들어, 감각은 무뎌지고, 반갑지도 않은 질병이 자꾸 찾아오며, 직접적인 체험으로부터 오는 삶의 기쁨도 크게 줄었다. '몸의 상실'은 '인간적인 차원'의 상실이기에 심각하다.

  다비드 브르통이 쓴 『걷기 예찬』은 걷기를 통해 몸의 세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미있는 산문집이다. '걷기'는 자신의 몸과 만나는 가장 자연스럽고 단순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걷기는 우리 자신을 인간적인 차원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소나 말이나 법이나 자동차나 컴퓨터나 아닌, 인간임을 깨닫게 해 준다. 저마다의 키의 높이에서, 저마다의 몸무게를 두 다리로 받치고, 저마다의 두 팔을 휘저으며 우리는 걷는다. 그밖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거추장스런 짐을 벗어 던지고 가장 소박하고 원초적인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수준에서 포맷된다. 자동차는 우리를 목적지까지 빨리 데려다 놓지만, 우리를 하나의 짐짝으로 전락시킨다. 그 순간 우리는 주체에서 사물로 변화하며 세계와 나는 서로 타자로 머문다. 만남이란 없다. 모든 만남은 여유와 관심, 호기심과 열정 속에서만 가능한 법. 온 몸의 감각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자극을 통해 건강한 의욕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배울 수 없으며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걷는 동안에는 다르다. 세계는 인간의 차원으로 정렬하며 또 우리와 만나기 위해 다가온다. 세계 속으로 우리 자신을 열어놓아 모든 감각이 활짝 깨어나고, 연인의 몸을 만질 때처럼 대지로부터 전해오는 소리와 냄새와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일종의 관능적인 예술이다. 이 예술 안에서 우리의 감성은 풍부해지고 인식은 깊어진다. 게다가 걷는 동안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길을 걸어갈 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면의 길을 걸어간다. 살아있음에 대한 상념이 깃들고, 가족과 사회와 우주에 대해 겸손한 명상이 펼쳐진다. 그리하여 맺혀있던 추억은 해방되고 꿈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예찬하거나 걷는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도 했다. 비노바 바베는 인도 전역을 걸으면서 부유층들이 자기 땅을 기증하도록 유도했고, 사티쉬 쿠마르는 걷는 행위로 세상에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하도 유신 시절에 자기 발로 전국을 순례했으며, 한비야는 걸어서 한반도를 종단했다. 뿐만 아니라 여름철이면 뙤약볕 아래서도 국토대장정에 올라 자신의 의지와 이상을 표현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남산에는 맨발로 걷는 흙길이 있어 잃어버린 감각과 자기 존재를 일깨워준다.

  걷기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와 성찰을 담고있는 『걷기 예찬』은 인간의 걷는 행위가 지닌 철학적, 예술적, 종교적 의미를 보여주면서 유장하게 흘러가는 아름다운 강물과도 같다. 이 강에 피에르 상소나 카잔차키스, 바슐라르와 소로우같은 사람들이 마치 지류처럼 흘러든다. 수십 권에 달하는 여행/명상 서적에서 뽑아 온 구절들이 양탄자에 새겨진 무늬처럼 책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정성스레 가려낸 40여컷의 흑백 사진도 매력적이다. 이 사진들은 품위와 깊이를 동시에 갖추고 독자를 더 깊은 사색으로 이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역자인 김화영 교수가 프랑스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물 중의 하나이다. 그의 감식안과 유려한 번역은 이 책의 값어치를 더욱 높여주는데, 역자의 말을 빌면,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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