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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힘이다 5》

금동원(琴東媛) 2020. 12. 12. 14:56

˘

 

 

아름다운 이름, 아름다운 인생

- 존 윌리엄스 《스토너》를 읽고

 

 

금동원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다. 탄생의 축복으로 지어진 이름은 가장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최초로 불리고 자신의 분신이 된다. 이름을 갖는다는 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름이 모든 것을 규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우리 삶은 어떤 의미로든 결코 가볍지 않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사는 동안 우리는 모두 살아가는 존재이며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이름은 어느 한 인간의 일생을 대신하며 이름과 함께 태어나 아름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로서 남는다. 소설 《스토너》는 우리 자신들의 삶일 수도 있는 문학과 책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이름, 아름다운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스토너군, 이 소네트의 의미가 뭐지?”

“이것은 소네트야, 스토너군.”

“14행으로 이루어진 시라는 얘기지.이건 자네가 오랫동안 사용해 온 언어지,

저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이미 세상을 떠났는데도 몇몇 사람의 머릿속에 여전히 남아있는 시인일세.

 

"그대 내게서 계절을 보리

추위에 떠는 나뭇가지에

노란 이파리들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는 계절

얼마 전 예쁜 새들이 노래했으나 살풍경한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내게서 그대 그날의 황혼을 보리

석양이 서쪽에서 희미해졌을 때처럼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더 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세익스피어 「일흔세번 째 소네트」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군, 그 목소리가 들리나?"

 

문학과의 운명적인 조우, 그의 인생에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한 선택의 전환이 시작된다. 스토너가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인생의 강을 건너고 있는 순간이다. 우리는 살면서 저마다 자신만의 운명적인 이런 순간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 대목은 시를 쓰는 나에게도 300년의 시공을 넘어 세익스피어가 말을 걸어온 듯 감동적이고 전율에 휩싸이는 감정이입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더 나은 농부로 살아가길 바랐던 부모님의 권유로 농업대학에 입학하지만, 문학에 눈을 뜨게 되고 한평생을 미주리대학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죽음을 맞이한 평범한 한 대학교수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 존 윌리엄스는 1922년생이다. 1942년(20세)부터 1945년(21세)까지 미 공군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하면서 첫 소설의 초안을 써냈다. 전쟁이 끝난 후 덴버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 시기에 첫 소설<오직 밤뿐인>을 출간한다. 1955년부터 모교인 덴버대학의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1985년 덴버대학을 은퇴할 때까지 30여 년을 한 학교에서 재직했다. 1965년 미주리대학 영문과 조교수의 삶을 그린 《스토너》를 발표한다. 1994년 향년 72세로 아칸소 페이예트빌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스토너》는 1965년 초판이 출간되었으나 2천 부 정도를 팔지 못한 채 절판되며 잊힌다. 그러나 2006년 뉴욕에서 재발행되며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구 못지않게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라는 문장을 달고 다시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50여 년 만에 “당신이 들어본 적 없는 최고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후 《스토너》는 전 세계적으로 변함없는 사랑을 받으며 판매와 작품에 대한 호평을 동시에 받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 스토너는 빈곤하고 희망 없는 부모님 곁을 떠나 미주리대학에 입학한다. 최소한의 대학공부를 마치면 돌아와 좀 더 전문적인 농부의 생활을 기대하는 부모님과 살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운명은 예고편처럼 그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처 슬론 영문학과 교수의 영문학 개론 강의를 통해 ‘자신이 읽는 책의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말 속에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이끌어 줄 열쇠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스토너는 ‘문학과 영문학과 교수’라는 두 개의 선망과 미래의 꿈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된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학에 남는다. 부모님이 계신 고향은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당연하다. 새로운 삶에 눈뜨면서 인생에 자기성찰과 정신적 고양을 깨달은 젊음이 어찌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운명은 앞을 향해서만 나가게 되어 있으니까.

스토너는 대학에서 두 명의 인생 친구를 만난다. 고든 핀치와 데이비드 매스터스, 그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스토너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 1940년대는 한창 전쟁 중이었고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몰려갔다. 두 친구도 각각의 명분과 젊은 혈기로 모두 전쟁터로 떠나지만 스토너는 학교에 무기력하게 남는다. ‘달빛 속에 알몸을 드러낸 채 회색을 띤 은빛으로 빛나는 순수한 기둥’ 대학의 신전 기둥만이 스토너 자신이 받아들인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 남은 것은 그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기로 한 최초의 결정 이후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선택이 된다. 전쟁터로 떠났던 친구 매스터스는 전쟁터에서 전사하고 핀치는 살아 돌아온다. 그러나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겪은 고든 핀치와 스토너가 같은 삶을 살았고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우정은 얼만큼의 무게로 작용하는가. 특히 문학 안에서 만나는 문우들과의 정신적 교감과 신뢰는 얼마큼 진실한 것일까, 죽음처럼 문학은 마지막까지 혼자 가야만 하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스토너는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는 교수가 되었고 그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왔다. 첫사랑의 순수한 환상과 불투명한 청춘의 사랑은 현실 속에서 매우 달랐지만 결국 첫사랑의 그녀, 이디스와 결혼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연히 이디스와의 결혼생활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결혼하여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 것인가.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드디어 스토너가 그녀를 마음에서 포기하는 이 대목은 마음이 스산해지며 애틋한 슬픔이 밀려들었다.

 

”아련한 연민과 내키지 않는 우정과 친숙한 존중이 느껴졌다. 지친 듯한 슬픔도 느껴졌다. 이제는 그녀를 봐도 예전처럼 욕망으로 괴로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도 다시는 없을 터였다.”

 

그러는 사이, 분신처럼 사랑했던 딸 그레이스는 아픈 손가락이 되어 잘못된 결혼과 출산을 하고 자신만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간다. 무기력하게 그 삶을 지켜보는 스토너는 가슴 아프지만 그 역시 딸의 삶이니 어쩔 수 없다. 딸 그레이스의 비극적인 몰락과 이디스의 히스테리는 그를 점점 더 자신의 내면으로 숨어들고 외부와 교통하지 않게 만든다.

그런 그에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정신과 육체의 결합이 완전하게 가능한 인생 단 한 번의 짧은 불꽃이 그에게 피어올랐다. 불륜이라는 도덕의 틀 안에 가두기에는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해주고 싶은 그들의 사랑은 나름대로 진실하고 충실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사랑도 결국 끝이 나버린다.

그러는 동안에도 스토너는 살아간다, 스토너의 삶은 아주 조용하게 아주 고요하게 자신 속으로 숨어드는 침묵과 침잠이다. 그래야 그는 견딜 수 있고 그는 지탱할 수 있다. 무기력하지는 않지만 그리 유능하지도 교활하지도 현실 순응적이지도 않다. 오직 문학과 책 안에서 살고 문학으로만 이야기한다. 문학의 자기 자폐적 부분이다.

이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인 소설이다. 주인공 스토너를 타인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지만, 그는 늘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말기 암과 투병하는 그는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점점 자신과 자신의 내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그는 우정을 원했다. 자신을 인류의 일원으로 붙잡아줄 친밀한 우정, 그에게는 두 친구가 있었지만 한 명은 그 존재가 알려지기도 전에 무의미하게 죽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이제 저 멀리 산 자들의 세상으로 물러나서....... 그는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결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된 열정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열정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렸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캐서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캐서린.”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뺐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죽어가는 사람은 누구나 아이들처럼 혼자만의 순간을 원한다고 했던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책을 펼친다. 그곳에 그의 인생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여름 산들바람에 실려 온 기쁨 같은 감정을 느끼며 그는 숨을 거둔다. 스토너는 최선을 다해 자신을 삶을 살아낸 것인가. 아니라면 다른 더 나은 최상의 선택이 있었을까. 우리는 사는 동안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이름,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 뿐이다.

 

 

- -2020 書로多讀 사화집 『독서가 힘이다 5』,(계간문예, 2020)

 

 

 

 존 윌리엄스 저/ 김승욱역 | 알에이치코리아(R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