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 기간
금동원
오랜만에 대청소를 한다
서랍 구석구석 숨겨 놓은 사연들이
먼지와 함께 뒹굴고 있다
무릎을 펴고 털썩 주저앉아
시간의 거리와 비례하는 미련들을
순서대로 펼쳐본다
버려야 사는 운명이다
비워야 사는 용서이다
실체는 없고 그저 쌓아 놓았던
욕망의 흔적들이
유효 기간이 지난 채 죽어 있다
몇 년 몇 월 몇 시로 정해놓고
딱풀처럼 딱 붙어 꼼짝 못하게 만드는
미련이든 슬픔이든
쓸쓸함이든 늙어짐이든
세상사에 이미 지나간 추억이다
하늘색 종량제 쓰레기봉투 한 가득
게으른 결단과 확신과 거짓들이
당연히 이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유효 기간만 믿고 살아왔던 인연의 장난
오늘에서야 처분되었다
- 《월간 시인》, (2023, 10, 통권 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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