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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를 읽다

풍경의 깊이/김사인

금동원(琴東媛) 2014. 12. 13. 17:03

 

 

풍경의 깊이

 

 

김사인

 

 

 바람 불고

 키 낮은 풀들 파르르 떠는데

 눈여겨보는 이 아무도 없다.

 

 그 가녀린 것들의 생의 한순간,

 의 외로운 떨림들로 해서

 우주의 저녁 한때가 비로소 저물어간다.

 그 떨림의 이쪽에서 저쪽 사이, 그 순간의 처음과 끝 사

이에는 무한히 늙은 옛날의 고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

어느 시간에 속할 어린 고요가

 보일 듯 말 듯 옅게 묻어 있는 것이며,

 그 나른한 고요의 봄볕 속에서 나는

 백년이나 이백년쯤

 아니라면 석달 열흘쯤이라도 곤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석달이며 열흘이며 하는 이름만큼의 내 무한

곁으로 나비나 벌이나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들이 무

심히 스쳐가기도 할 것인데,

 

그 적에 나는 꿈 결엔 듯

그 작은 목숨들의 더듬이나 날개나 앳된 다리에 실려

온 낯익은 냄새가

 어느 생에선가 한결 깊어진 그대의 눈빛인 걸 알아보

게 되리라 생각한다.

 

 

 『가만히 좋아하는』,(2006, 창비)

 

가만히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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