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외 1편
금동원
당신도 한때는 푸른 남자였습니다
눈빛은 뜨겁고 입매는 담백했던
가슴 깊숙이 품었던 연정만큼 모든 것을 꿈꾸었고
그때는 그거면 다 품은 거라 믿었던 시절
청춘도 사랑도 떠나고 남은 건 역겨운 세월뿐
희미한 미소에 감춰 둔 회한
이미 사라지고 없는 하얀 기억들
그래도 후회는 마십시오
아쉬움과 연민으로 동정받지 마십시오
당당한 눈빛과 연둣빛 목소리에서
아름다운 한 남자의 푸른 일생을 기억합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남자
아버지, 사랑합니다
시아버지의 제사
오늘은 시아버지가 오시는 날이다
아버님 오셨습니까
아버님 돌아가신 날은 짙푸른 가을이었습니다
어찌나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달던지
햇살은 무르익어 향기롭고
온 세상이 적당히 풍요롭고 평화로웠지요
가끔 높고 파란 가을하늘을 보면
짙은 그리움 한 조각 구름 되어 흘러갑니다
돌아가신 지 삼십여 년이 지나도록
꿈에 모습 한번 없으신 걸 보면 그곳에서도
편안하고 안녕하신 줄 알겠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술과 담배는 어찌 되셨습니까
당연히 금주와 금연하고 계시겠지요
이렇게 일 년에 한 번 뵙게 되어 참 좋습니다
잠시 더 머물러 계시다가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 두 손자 증손자까지
두루두루 찬찬히 살펴주시고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
문 열어두었습니다
조심해서 안녕히 가십시오
-《상상탐구》 10호, (2024 계간문예작가회 무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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