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詩 이모저모 99

오십 미터 /허연

『오십 미터』 허연 | 문학과지성사 ○책 속으로 오십 미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

詩 이모저모 2019.05.06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마로니에북스 “요즘에는 눈만 뜨면 글을 쓰고 싶다. 글도 참 잘 써진다”며 생애 마지막 작업으로 써내려갔던 유작 시 39편만 세상에 남겨둔 채 흙으로 돌아간, 우리 문단의 거목 작가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고 남아 있는 모든 기운을 사르며 그가 남긴, 스스로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미발표 시 36편과 3편의 시를 더한 총 39편의 시, 그리고 젊은 시절과 일상을 담은 사진 30여 컷이 수록된 유고시집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엄격하였지만, 또 가장 자유인이기를 소망하였던 인간 박경리의 모습이 담긴 마지막 노래들은 무거웠던 생의 발걸음들을 하나 하나 털어내듯 잔잔하게 퍼지며 독자들의 그리움 속에 작은 울림을 전해..

詩 이모저모 2019.05.05

황무지/T.S. 엘리어트

『황무지』 T.S. 엘리어트 저/황동규 역 | 민음사 모더니스트 시인 T. S. 엘리엇을 수식하는 말은 여러 가지다. 낭만적 서정 시인이자 이상적 혁명주의자. 그의 대표작을 묶은 이 시선집 『황무지(The Waste Land)』는 꿈같은 환상의 세계, 강렬한 주관적 색채, 그리고 사회 정의 구현과 개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기록들로 요약할 수 있다. 1948년 T. S. 엘리엇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것은 대단한 영예이자, 선정 위원회가 모더니즘을 인정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첫 노벨 문학상이 수여된 1901년 이후 반세기 동안 심사위원들이 보여 준 취향은 확실히 낡아 있었다. 때문에 1923년 수상자 W. B. 예이츠를 제외하고는, 엘리엇 이전 수상자들은 사실상 모두가 지금은 대체로 잊혔다. 그러..

詩 이모저모 2019.04.04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두 페소아 저/김한민 역 | 민음사 ○작가 소개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1888년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가족 모두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으로 이주했다. 1905년에 홀로 고향으로 돌아와 리스본 대학 문학부에 입학했으나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고는 영어 무역 서신을 번역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1912년 『아기아』에 포르투갈 시문학에 대한 글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을 시작했고, 1915년 포르투갈 모더니즘 문학의 시초라 평가받는 잡지 『오르페우』를 창간했다. 일생 동안 여러 잡지와 신문을 통해 130여 편의 산문과 300여 편의 시를 발표했고,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몇 권의 영어 시집을 펴냈다. 1934년 생전에..

詩 이모저모 2019.04.03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30주기 기념) 기형도/ 문학과 지성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문학과지성사, 2019)는 기형도의 30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시들을 오롯이 묶은 기형도 시 ‘전집(全集)’입니다.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1989)에 실린 시들과 미발표 시들 97편 전편을 모으고, ‘거리의 상상력’을 주제로 목차를 새롭게 구성한 책입니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정거장에서의 충고’와 함께 생전의 시인이 첫 시집의 제목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여전한 길 위의 상상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두터워지는 기형도 시의 비밀스런 매력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그의 시를 찾고 또 새롭게 읽기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작가 소개 주로 유..

詩 이모저모 2019.03.08

헌사 / 노발리스

헌사 노발리스 그대는 내게 고귀한 충동을 일으켜 넓은 세계의 정서 깊숙이 빠지게 하네. 그대 손이 나를 잡아 믿음을 주니 온갖 폭풍우를 헤치고 나를 날라주리. 그대 꾸중하면서 아이를 돌보며 그와 더불어 전설의 목초지를 지나네. 부드러운 여인의 원형(原型)으로서 소년의 가슴을 한껏 뛰놀게 하네. 무엇이 이 지상의 집에 나를 얽매어놓고 있는가? 나의 가슴과 나의 삶은 영원한 당신의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대 사랑은 이 지상에서 나를 감싸주지 않는단 말인가? 나는 그대 고귀한 예술에 나를 바칠 수 있노라. 그대, 사랑하는 이여, 뮤즈가 되어 내 시(詩)의 고요한 수호신이 될지니, 영원한 변화 속에서 이곳 지상의 노래의 은밀한 힘이 우리에게 인사하노라. 이곳에서는 젊음으로서 우리를 에워싸 흐르고, 그곳에서는 영..

詩 이모저모 2019.02.12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자신을 괴롭힌다

윤유나 편 / 폴 발레리, 노발리스, 릴케등저 외 24명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기욤아폴리네르 나는 일요일의 휴식을 살핀다 게으름을 찬양한다 감각들이 내게 떠넘기는 저 끝없이 미미한 지식을 어떻게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감각은 산이다 하늘이다 도시다 내사랑이다 감각은 사계를 닮는다 그것은 목이 잘린 채 산다 그 머리가 태양이고 달은 그것의 잘린 목이다 나는 끝없이 뜨거운 시련을 겪고 싶다 청각의 괴물인 네가 포효한다 울부짖는다 천둥이 녜 머리칼을 대신하며 네 발톱이 새들의 노래를 반복한다 괴물 같은 촉각이 파고들어 나를 중독시킨다 눈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헤엄친다 법접할 수 없는 별들은 시련을 겪지 않은 지배자들이다 연기로 된 짐승은 머리가 꽃피었다 월계수의 풍미를 지니고서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 저 ..

詩 이모저모 2018.12.25

Lo-fi /강성은

Lo-fi 차분한 여자와 차분한 남자가 차분한 말을 주고받는 한여름 병원의 임종 서해 먼 바다의 물결은 최고 1m 동해와 남해 먼 바다에서는 최고 1.5m 먼 바다로 미끄러져 가는 일요일 오후 *제목 'Lo-fi'는 저음질이라는 뜻이다. 좋아하는 인디 음악가들이 보통 집에서 홈레코딩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음질이 대개 로파이다. 내가 시 쓰는 동안 저음질을 만들어내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다 (문학과 지성사 트위터에서) 『Lo-fi 』 강성은/ 문학과 지성사 강성은의 세번째 시집 『Lo-fi』(문학과지성사, 2018)가 출간되었다. 강성은은 2005년 문학동네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동화적 상상력을 낯선 방식으로 풀어낸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창비, 2009)와 무의식적 주체를 통해 ..

詩 이모저모 2018.11.28

『릴케 시 여행』-정현종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 릴케 시 여행』 R.M.릴케 /정현종 옮김 | 문학판 릴케의 시를 우리말로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의 시뿐 아니라 그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통찰한 사람의 번역본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시 내면의 깊숙한 교감과 시 바깥의 무한한 자유로움, 시 고유의 섬세한 리듬을 아는 번역가 정현종 시인은 『정현종 시인의 사유 깃든 릴케 시 여행』에서 원작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번역과 함께 시론에 가까운 자신만의 깊이 있는 해설과 감상을 쉽고 단정한 문장으로 붙여 이제까지 어렵게만 느꼈던 시인의 시를 독자가 보다 친밀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기도하는 시간을 위한 책 나는 세상에서 무척 외롭지만, 매 순간을 신성하게 할 만큼 외롭지는 않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너무 작지만 영리하고 드러나지 ..

詩 이모저모 2018.02.10

간발 /황인숙

간발 황인숙 앞자리에 흘린 지갑을 싣고 막 떠나간 택시 오늘따라 지갑이 두둑도 했지 애가 타네, 애가 타 당첨 번호에서 하나씩 많거나 적은 내 로또의 숫자들 간발의 차이 중요하여라 시가 되는지 안되는지도 간발의 차이 간발의 차이로 말이 많아지고, 할 말이 없어지고 떠올렸던 시상이 간발 차이로 날아가고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고 길을 놓치고 날짜를 놓치고 사람을 놓치고 간발의 차이로 슬픔을 놓치고 슬픔을 표할 타이밍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네 바늘에 찔린 풍성처럼 뺨을 푸들거리며 놓친 건 죄다 간발의 차이인 것 같지 누군가 써버린 지 오래 탐스런 비유도 간발로 놓친 것 같지 간발의 차이에 놓치기만 했을까 잡기도 했겠지, 생기기도 했겠지 간발의 차이로 내 목숨 태어나고 숱한 간발의 차이로 지금 내가 이러고 있..

詩 이모저모 2018.01.24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 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악의 꽃』, (김붕구 옮김, 민음사, 1974)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Charles(-Pierre) Baud..

詩 이모저모 2018.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