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나의 산문 29

곶자왈

곶자왈 뉴제주일보 승인 2022.12.20 19:00 금동원 시인 싸하게 맑은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가슴 깊숙이 들이마신 상록수림 특유의 싱그럽고 깨끗한 숲의 향기에 마음은 편안하고 차분해진다. 숨 쉬는 자연이 주는 명상의 시간이다. 온갖 잡념도 세상 속의 시끄러움도 모두 사라진 평화롭고 경건한 고요가 내딛는 발걸음 속에 스민다. 평소 자주 찾는 애월지역의 곶자왈 ‘금산공원’을 다녀왔다. 코스가 짧은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자연 그대로를 감상할 수 있다. 걷다 보면 마을의 풍요와 무사 안녕을 바라며 표제를 지내는 납읍리의 포제청(제주 무형문화재 6호)도 남아있다. 곶자왈은 제주도의 자랑이다. 숲을 뜻하는 ‘곶’과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을 합친 제주도 토속어다.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나의 산문 2022.12.20

초심의 시간

초심의 시간 뉴제주일보 승인 2022.10.11 19:00 금동원 시인 외출 준비를 하는데 어지럼증과 식은땀으로 온몸에 힘이 빠지며 혼절 직전의 이상증세가 일어났다. 당황스러웠지만 평소 저혈압으로 가끔 겪는 증세와 흡사하여 외출을 포기하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보통은 금방 괜찮아지는 편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머리가 아프고 열도 계속 오르며 쉽게 회복이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 복통까지 와 화장실을 들락거리자 갑자기 온몸이 경직되면서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다. 뭐지? 코로나?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최근 며칠 동안 동선을 최소화했기에 접촉할 만한 대상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증상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동안 얼마나 코로나에 대한 강박증과 공포 속에 살고 있었는지 새삼스럽게 실감이..

나의 산문 2022.10.11

한치잡이 배에 불 밝히듯

뉴제주일보 승인 2022.08.02 21:42 금동원 시인 한림항 근처의 한수리 마을 포구 앞 톤대섬 일몰은 특별히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신비로운 노을빛을 마주하면 마음은 언제나 경건하고 숙연해진다. 맑고 투명한 날은 주홍빛 노을의 밀도가 더욱 선명해져 화려하게 번지는 하늘빛은 범 우주적 공간처럼 경이롭다. 석양이 사라지고도 아득하게 퍼져있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황홀함은 평화로운 여운과 고요가 어울려 단 한 번뿐인 찰나의 풍경화가 된다. 이 무렵 항구 근처는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바다로 출항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 한치잡이 배들이다. 눈이 시릴 정도의 전등을 환하게 매단 크고 작은 어선들이 한치잡이를 나가느라 분주하다. 활력 넘치는 바다는 어부들의 건강하고 억척스러운 고단함이 스며있..

나의 산문 2022.08.02

차를 마시며

뉴제주일보 승인 2022.05.24 19:00 금동원 시인 차를 좋아해 재미 삼아 심어놓은 녹차나무에서 올해 첫 찻잎을 땄다. 이른 봄 꽃샘의 찬바람과 눈발을 이겨낸 잎사귀가 연초록으로 환하다. 우전(雨煎)차는 24절기 중 하나인 곡우(穀雨) 전에 찻잎을 따서 만든 차를 말한다. 곡우(穀雨)는 청명(淸明)과 입하(立夏) 사이에 있으며, 음력 3월 중순쯤에서 양력 4월 20일 무렵에 해당한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딴 찻잎으로 만든 차라 하여 첫물차라고도 한다. 아홉 번을 덖은 녹차는 연둣빛이 그대로 우러나와 부드러운 빛깔이 편안하다. 여린 찻잎으로 만들어 차 맛은 은은하고 순하다. 싱그러운 차향이 번진 한가한 봄날 오후의 공간은 한결 여유롭다. 시간은 깊은 연못의 짙은 빛으로 고요하다가 얕은 바람에 살랑거..

나의 산문 2022.05.24

미니멀리즘

뉴제주일보 승인 2022.03.29 19:23 금동원 시인 얼마 전 휴일에 단단히 벼르고 있던 책을 정리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언제나 작은 서재는 책들로 넘쳐난다. 정기적으로 발송되는 각종 잡지 외에도 새로 출간된 시집을 보내주는 시인들도 많고 평소 읽고 싶어 눈여겨보다 사놓은 책도 제법 많다. 틈틈이 정리하고 일정 분량만큼 규칙적으로 비워내고 기증하고 소비하는데도 책은 산더미처럼 쌓여가기만 한다. 공중파 TV에서 집안의 복잡한 살림살이를 전문가가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것은 집마다 처박혀 있던 쓰레기더미 같은 살림들을 기가 막히게 분산 배치하여 세련되고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것이다. 정리 전후를 비교해보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18..

나의 산문 2022.03.29

바다로 이어진 희망

뉴제주일보 승인 2022.01.18 19:15 금동원 시인 새해를 맞아 송악산 둘레길을 다녀왔다. 언제 걸어도 아름다운 곳이다. 주변 풍광이 주는 경이롭고 평온한 분위기는 쓸쓸하면서도 한편 여유롭다, 멀리 산방산의 우뚝 선 위용이 든든하다. 용머리 해안의 신비로운 모습은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아도 아련하다. 눈이 시리게 푸른 수평선에 걸려있는 화물선은 작은 깃발처럼 아득하고, 겨울 바다의 바람 냄새는 묵은 먼지를 걷어내듯 개운하고 상쾌하다. 가슴 안으로 환한 설렘이 밀려든다. 드넓은 바다의 아늑함은 시름과 걱정, 분노와 까칠함의 응어리를 녹여주고 풀어준다. 우울한 무기력을 차분하게 다독이며 부드럽고 따뜻한 위로를 준다. 충만한 힘은 무엇인가. 황홀한 금빛으로 퍼지며 온몸을 감싸는 듯한 영적 기운, 자연과..

나의 산문 2022.01.18

기억의 샘물

뉴제주일보 승인 2021.11.16 20:30 금동원 시인 얼마 전에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 만나면 늘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가지는 지인들이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작은 해프닝으로 한바탕 웃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모임의 날짜와 시간, 장소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디서 헷갈린 것인지 우리의 기억은 모두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쩍 건망증이 심해졌다. 듣고 나면 금방 잊는 경우가 허다하다. 메모와 알람을 활용하며 의도적인 노력으로 방법을 찾고 있지만, 끊임없이 생성되는 망각, 건망증의 징후들이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어떤 이들은 출산이나 수술 등 전신마취를 한 두 번 경험한 사람들은 기억력은 포기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씁쓸하지만 반박할 ..

나의 산문 2021.11.16

힐링 여행

뉴제주일보 승인 2021.09.07 20:00 금동원 시인 여행은 일상의 권태와 피로에 지친 우리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삶에 꼭 필요한 산소이자 세상을 향해 넓은 안목의 통찰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몇 해 전 호주 남동부에 있는 멜버른을 여행한 적이 있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의 큰 도시로 호주의 옛 수도이기도 하다.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유서 깊고 매우 아름다운 도시다. 멜버른에는 1867년부터 문을 연 100년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래시장이 있다. 여행객에게 좀 더 알려진 퀸 빅토리 마켓과 현지인이 더 많이 찾는 사우스 멜버른 마켓이다. 매주 수금토일에 열린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여행이었기에 평소 좋아하는 전통시장에 들렀다. 이국적이고 다양한 물건의 시장풍경..

나의 산문 2021.09.07

침묵과 동행하며

뉴제주일보 승인 2021.07.06 21:09 금동원 시인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걷는 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다. 집 근처나 멀지 않은 둘레길을 따라 타박타박 걸을 때의 상쾌하고 가벼운 기분은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 듯 육체의 활력은 곧 정신 활동에도 좋은 에너지를 전해준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지친 심신을 걸으면서 다스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다비드 르 브르통은『걷기 예찬』이라는 책에서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걷는다는 것은 자연과의 교감이자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혼자 걸으며 느끼고 듣는 몸의 소리와 마음의 이야기를 사색하는 즐거움은 얼..

나의 산문 2021.07.06

분노조절장애

뉴제주일보 승인 2021.04.20 19:14 금동원 시인 얼마 전 제주공항에서의 일이다. 공항 대기실은 오가는 여행객들로 소란스러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들뜨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때였다. 유리컵이 깨지는 듯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는데 덩치가 제법 큰 한 남자가 떠미는 바람에 50대 중년여성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였다. 그다음은 더욱 놀라웠다. 잽싸게 일어난 여성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에게로 돌진하며 입에 담기 어려운 거친 욕을 해대며 닥치는 대로 온몸을 할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리며 순식간에 공항 대기실은 공포의 침묵으로 조용해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난감함으로 사람들은 일시정지상태로 멈춰 서서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

나의 산문 2021.04.20

봄 청소

뉴제주일보 승인 2021.02.16 18:03 금동원 시인 입춘 절기가 지나면 봄기운은 귀신같이 스며든다. 코끝이나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싸하고 으슬으슬한 공기 안에 봄의 숨결이 들어와 있다. 지난해 우리는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견뎌왔는가. 새해가 시작되면서 평범한 일상을 기대하고 바랐지만 지금도 마스크를 쓴 우울한 봄날은 계속되고 있다.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새해가 시작됨에 행복한 일이 많기를 희망하는(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 입춘에는 새 출발의 마음으로 청소만 한 게 없다. 지루했던 긴 겨울의 찌뿌둥하고 답답한 심사를 풀기 위해 봄 청소를 한다. 알싸하고 성급한 2월의 봄은 원래 집 안 대청소와 함께 시작된다. 일본은 일찍이 하찮게 여긴 청소를 정신수양 혹은 마음의 평온을 위한 ..

나의 산문 2021.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