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나의 詩 106

사유의 방/ 금동원

사유의 방 금동원 겨울 숲을 걷는다 몇몇 희망을 믿는 푸른 잎사귀 힘겹게 매달려 있고 여름에는 보지 못했던 나무 속살은 눈물겹도록 창백하고 앙상하다 뼈의 무게는 슬픔보다 쓸쓸함이 더 커 찬바람의 서러움을 겨울나무는 온몸으로 받아내며 깊은 사색의 풍경으로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기쁨이 한 줄기 눈부신 저녁 햇살을 통과하면 인내한 삶의 시간은 한결 늠름하고 여유로워진다. 무겁지 않은 단단함으로 가볍지 않은 투명함으로 내면으로부터 차오르던 의심과 질문들은 사유의 공간을 휘돌며 경이롭고 고요한 시간으로 흘러간다. -《古書硏究》, (2022 한국고서연구회, 통권 40호)

나의 詩 2023.02.19

나이 듦에 대한 소란함/ 금동원

나이 듦에 대한 소란 금동원 남루한 육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전설과 신화는 이제 죽은 이야기인걸 각화된 껍질 벗기면 드러나는 붉은 살 욕망의 검은 띠를 두르고 미화된 나이테로 두꺼워지지는 말자 둥근 비명을 지르며 잘려나간 시간은 생명의 비린 습기를 품은 서글픔인걸 검버섯같이 번져가는 얼룩진 혈색은 무미건조한 삶의 고단함이 묻어 여행 직후 여독처럼 투박하게 검붉다 그리움은 점점 밋밋해지고 사막에서 불어오는 검은 모래바람은 오아시스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인걸 잘 익은 단풍나무는 환하지만 세월에 흔들리며 나이 듦은 조금 소란스럽다 -계간 《시에》, (2022 겨울호 통권 68호)

나의 詩 2022.11.16

기억의 강/ 금동원

기억의 강 금동원 하늘을 뒤덮은 황사 누렇게 쌓인 시간 속에서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건 첫 마음뿐 속인 것도 아니고 속은 것도 아닌데 우리는 언제나 속았고 모두를 속였다 매우 나쁨 붉은 경고등으로 뒤덮인 하늘은 수상하리만치 아득하게 짙푸르다 목멘 뿌연 황사가 다시 몰려온다 초미세먼지는 결이 너무 고와서 눈이 시리게 고요하고 서글프다 -계간 《시에》, (2022 겨울호 통권 68호)

나의 詩 2022.11.16

모과木瓜/금동원

모과木瓜 금동원 시간을 견디며 익어 온 그윽하고 달달한 사색의 과즙 시린 겨울을 보내며 거둔 견실한 무게의 빛나는 결실 발긋한 볼 빛의 유혹 못난 열매의 매혹적인 미소와 화사하게 상기된 표정 속에 숨어있던 오만한 향기 깊이 숨겨뒀던 짙은 몸짓에 청초한 도발이 묻어나는 오로지 향과 맛으로만 기억되면 안 돼 봄부터 오랜 시간 모멸과 인내로 버텨낸 분홍색 꽃빛을 만난 적이 있다면 황금빛 사랑의 열매에 박수쳐야 하리 - 《우연의 그림 앞에서》. (계간문예 2015) 2022 천태산 은행나무 시 걸개 시화전에서

나의 詩 2022.10.02

생의 집 청소/ 금동원

생의 집 청소 금동원 봄꽃도 앞다퉈 피다가 말고 아차, 이건 너무 복잡한 화려함이야 고요하게 낙화한다 인연이라 여기며 붉은 색실로 엮어왔던 사랑도 그렇지, 이건 너무 복잡한 사연들이야. 엉켜버린 시간을 한 올씩 풀어가며 고요하게 흘러간다. 갈망했던 욕망의 자리는 담백하고 간결하게 투명하고 홀가분하게 마음에 쏙 드는 미니멀리즘*이 되어 깃털처럼 날아오른다 생의 집 청소하는 날 애썼어, 아득하게 돌아가야 할 길 마음은 개운하고 정갈하다 *미니멀리즘: 장식적인 요소를 일체 배제하고 표현을 아주 적게 하는 문화 예술 기법 -《문예운동》, (2022 가을호 통권 155호)

나의 詩 2022.09.20

늙은 대추나무/ 금동원

늙은 대추나무 금동원 회임과 탄생, 끝없는 생명의 역사는 덧없이 오그라들고 하늘을 향해 치솟던 당당한 시절 꽃피울 권리와 열매 맺을 권리 모두 얽히고 꼬여 전설이 된 나무 흔든다고 흔들리다니요 살짝, 아주 살짝만 건드렸는데 후두둑 툭툭 주름지고 메마른 열매 다 떨어집니다 온몸으로 계절을 받아내며 품었던 시詩 까칠한 가시와 앙상한 뼈대 풋풋했던 초록을 기억하는 붉고 얇은 입술 서늘하고 달달했던 영광도 세월 참 무상하고 씁쓸합니다. -월간 《순수문학》, ( 2022 9월 통권 346호)

나의 詩 2022.09.16

고래, 하늘을 날다/ 금동원

고래, 하늘을 날다 금동원 나 어릴 적 꿈은 하늘을 날아보는 거였지 신비의 깊은 바다 동굴 속을 빠져나와 고래의 숨구멍에 회전 날개를 달고 하늘로 솟아올라 우주 탐사선으로 변신해보는 것 바다에서 배운 잠영 실력으로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속으로 숨어들어 보는 것 우주를 떠도는 길 잃은 어린 별들을 찾아낼 것 새파란 하늘에 고래 지느러미가 만드는 알록달록 바다무늬를 칠해 볼 것 바람의 환호소리를 온 몸으로 느끼며 하늘을 날자 프로펠러를 힘차게 돌려라 무지개빛 물고기들이 열어주는 꿈의 빛을 따라 푸르고 영롱한 코발트의 나라로 가보자 -『고래문학』, (울산문인협회 2017)

나의 詩 2022.07.27

난청의 시대/ 금동원

난청의 시대 금동원 당신을 듣는다는 것은 당신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힘들게 인내하는 일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는 귓바퀴에 걸려 넘어지고 말이 될 수 없는 언어는 연소되지 못한 굴뚝 속 연기처럼 뿌연 회색빛으로 흩어집니다. 거기 그대와 함께 있었습니다 강물이 흐르고 있었으나 바람도 함께 불고 있었으나 진실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난청의 시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 보다 훨씬 힘이 드는 일입니다 -《계간문예》, (2022 여름호 통권 68호) 사진출처: 두 마리의 새

나의 詩 2022.07.06

못에 대하여/ 금동원

못에 대하여 금동원 잘 걷다가도 우리는 넘어진다 힘없이 꺾이고 부서진다 부서진 뼛조각을 감싸는데 필요한 것은 못이다 못은 날카롭지만 단단하게 상처를 지탱하고 녹슬기 쉽지만 새 뼈를 만들며 부드럽게 주변을 껴안는다 모진 아픔이라는 견딤을 통해 더 견고하게 결합하고 다시는 쪼개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화합을 이뤄낸다 통증의 아린 기운이 삶을 통과해 공포와 슬픔을 전하는 동안 뼈에 스민 못은 녹아들며 성숙해진다. 용서와 사랑의 노래로 절망을 치유한다 스스로 진액을 뿜어내며 기쁘게 부활한다 -《계간문예》, (2022 여름호. 통권 68호)

나의 詩 2022.06.27

사막에 가자/ 금동원

사막에 가자 금동원 그리움을 만나러 가자 지난 것들에 대한 목소리를 듣고 잃어버린 가슴을 찾아 엉켜버린 마음 길의 실타래를 풀고 힘겹게 엮어놓은 나의 역사를 위해 새로 만든 이정표를 찾아 사막에 가자 외로움을 묻으러 가자 다가갈수록 멀어져가는 눈 깜짝할 새 사라져버리는 신기루같은 혼돈과 무질서의 근원을 버리고 사랑으로 읽히는 별의 길을 따라 다시 사막에서 만나자 어느새 모습을 바꾼 내 안의 나 바람아 쓸어가라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방 욕망을 날리고 온전히 떠나자 죽은 사유와 썩은 의지를 버리고 텅 빈 사막에서 다시 시작하자 -『우연의 그림 앞에서』,(계간문예, 2015)

나의 詩 2022.05.12

되돌이표/ 금동원

되돌이표 금동원 저녁노을로 변해가던 햇살이 무지갯빛 공중돌기, 찰나의 마법으로 돌고 돌아 되돌이표 찍는 하루가 완성되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던 갯벌이 발효된 밀반죽의 질감으로 부풀어 오르고 찰진 바다의 비밀스런 탄력이 고개를 든다 소소한 일상들이 소리없이 튕겨 오르고 음양오행의 원리가 손금처럼 얽혀 순환하는 강화도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본질은 그대로 가치있는 삶이 돌아오는 시간 반복이, 반복하며, 또 반복을 낳고 해와 달 그리고 별과 꿈 우리는 우주의 한 가운데 서 있다 -『우연의 그림 앞에서』, (계간문예, 2015)

나의 詩 2022.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