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나의 詩 107

결혼행진곡1,2 / 금동원

결혼행진곡 · 1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동원 둑이 터져 범람하는 강물의 소용돌이 거침없고 폭력적인 물거품을 품고 코로나19는 결혼식장 안까지 쳐들어왔다. 환희의 풍경과 새 출발을 알리는 축복의 팡파르 화사한 온도를 준비했던 신랑신부 애매하고 모호한 축하객들 소리 없는 빈 박수만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의 행진은 힘차고 의젓했고 신부의 첫걸음은 우아하고 고혹적이다 꽃가루는 조금 시무룩해 보여 힘없이 흩날리고 주례선생의 힘찬 다짐과 격려는 안간힘을 쓰며 홀을 돌고 돌아 마스크를 쓴 모든 축하객의 기분을 살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코로나 쓰나미와 맞서 사랑은 시험에 들었으나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언젠가는 무엇이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넘어가는 생의 고갯길 결론을 말하지 말고 오늘은 축복의..

나의 詩 2020.12.02

지음(知音) / 금동원

지음(知音)* 금동원 당신은 나의 지음이다 몸속에 너의 뜨겁고 서러운 피가 흐른다 고뇌와 슬픔의 무게만큼 날카로운 존재 고래가 서로의 주파수로 바다를 헤엄치 듯 푸른 물빛으로 스며들며 넘치는 사랑은 희미하게 번지는 붉은 피를 토해낸다 당신은 나의 고유명사 소리로 알아듣는 끄덕임으로 충만한 파장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닮은 음파)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소리를 내고 같은 음식을 먹고 분노와 웃음의 결이 잔잔하게 닮아 통한다 (분신처럼 사랑하라) 살아있음의 감격으로 감동한다 기도의 마지막 목소리는 구원일지라도 생명의 자리는 지금 여기 이순간이니까 *지음(知音): 자기 뜻을 알아주는 참다운 친구 -시집 《시속의 애인》, ( 서정시학, 2020)

나의 詩 2020.06.14

사이 / 금동원

사이 금동원 너와 나의 거리는 한 뼘 위험한 거리, 너무 가깝지 열 뼘은 너무 멀어 닿지 않을 거리 멀어질까 슬픈(벌써 그리운) 안전한 거리는 어디쯤인가 마음을 대신 할 공간은 없지 눈빛이 말하는 속삭임을 들을 정도 표정이 말하는 설렘을 느낄 정도 그 정도면 될까 지금 이 별 속에 있나 우주를 유영하는 나비 짓으로 거리 사이의 고통 침묵만큼의 슬픔 손이 닿을 듯 입술 닿을 듯 한 뼘과 열 뼘 사이의 절벽 같은 절망 폭포처럼 수직낙하 하는 그리움 우리들의 거리는 어디쯤일까 -《시 속의 애인》, (서정시학, 2020) photo by k. seoung. jun

나의 詩 2020.06.04

시의 비밀 / 금동원

시의 비밀 금동원 베일을 벗겨라 너의 고백을 들어보자 불에 데인 듯(인두로 지진 듯) 얇게 박피된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시의 진물 진실이 피의 강으로 흐른다 은밀한 언어로 떠도는 혼의 소리 시, 너의 비밀 하나 던져주면 난 울지 않을께 환희에 차서 허공을 휙휙 스치고 사라지는 시의 냄새 시큼하기도 한 쓴 맛 -『본질과 현상』, (2019년 여름호, 통권 56호)

나의 詩 2019.09.07

장마 / 금동원

장 마 금동원 허물을 벗은 시간이 또 하나의 시간으로 변태 하는 날 막 울음 주머니가 성숙된 개구리가 운다 대지는 충분히 젖어 완전한 몸으로 환생하고 더디기만 하던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청춘이 그리운 봄날은 잊어도 되겠다 태양에 익어버린 여름날의 바람소리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휘파람처럼 퍼진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고 외치는 순간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 『여름낙엽』, (월간문학출판부, 2008)

나의 詩 2019.07.16

비트코인/ 금동원

비트코인* 금동원 수학을 좋아하세요? 역설로 묻는 이 질문에 당당한 자는 수수께끼 같이 비틀린 세상의 꿈과 희망을 해독한 자 내 것인데 내 것이 아닌 돈이지만 돈이 아닌 놓쳐버린 사랑처럼 허공에 뿌려진 욕망 어디에 쉼표와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모르는데 돈은 무언의 생명을 부여받고 가치는 실핏줄처럼 투명하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네요. 정체 없는 진실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어야 하나요 공중에 세운 누각처럼 아슬아슬하지만 실체가 있다니! 오르락내리락 쉴 틈 없이 움직이는 주가의 무질서한 등락처럼 가상화폐와 닮은 내가 공중을 떠다닙니다 *비트코인 :중앙은행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온라인 가상화폐 -『계간문예』, (2019 봄호, 통권 55호)에 수록

나의 詩 2019.03.31

유모차가 걸어간다 /금동원

유모차가 걸어간다 금동원 1. 두 대의 유모차가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네 발로 걷고 건장한 두 발로 세계를 딛고 언젠가부터 세 발로 인생의 벼랑을 향해 걸어간다 2. 앙증맞은 돌쟁이 발을 방울처럼 달랑달랑 매달고 시작을 향해 행진하듯 싱싱한 바퀴의 유모차 걸어간다 3. 한때는 우주의 중심에 서서 모성과 자존으로 버티며 서 있던 두 다리 누렇게 빛바랜 퇴행성의 무릎들이 구부정하게 휘어버린 녹슨 다리들이 세월의 때와 냄새로 얼룩진 낡은 유모차를 끌고 걸어간다 4. 아이로 돌아간다 아득한 모천의 처음을 향해 순리와 시간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유모차가 신호대기선 앞에 서있다 -『계간문예』, (2019 봄호, 통권 55호)에 수록

나의 詩 2019.03.25

치매찬양/ 금동원

치매찬양 -알츠하이머3 금동원 차라리 축복이라 하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함을 아름다운 날들은 안개낀 강가의 희미한 풍경화로 남아 들을 수도 들려 줄 수도 없는 연민으로 이제 눈과 눈빛 만으로는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없다. 결코 듣고 싶지 않은 슬픈 목소리의 이야기와 어쩌면 아름답지 않았을 지 모르는 일생 차라리 기쁨이라고 하자 그렇지 않은가 인간의 생이란 참 선명하기도 하여 아, 곤란하다 인두로 지진 듯 온몸에 찍힌 욕창 그것들은 질긴 생명력의 표식처럼 살아 움직이지만 곧 까맣게 타다가 사그라져간다 허물을 벗듯 떨어지는 삶의 각질, 그 살들 낙엽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별똥별일까 모든 건 한순간이라고 해주자 부끄러움 사라진 몸뚱이 사이를 흰 연탄재처럼 산화된 기억만이 창백하게 서성..

나의 詩 2019.03.24

착하다/ 금동원

착하다 금동원 예쁘고 잘 생겨야 착하다 미끈하게 섹시해야 착하다 쵸콜릿 복근 식스팩이 착하다 부자니까 착하다 집안과 학벌이 착하다 착하고, 착하고, 착하다 마음보다 빠른 몸 감정보다 빠른 감각 지혜보다 빠른 영악한 계산 노력보다 빠른 현실적 결론 착하기 참 어려운 세상, 너무 착해서 바보인 시절을 넘어 머리끝서 발끝까지 착해야 되는 오늘 희, 로, 애, 락, 착하다 -『마음에도 살결이 있어』, (월간문학출판부, 2011)

나의 詩 2019.03.12

재생의 밤/ 금동원

재생의 밤 금동원 탄력을 잃어버린 꿈 윤기와 혈색이 사라진 창백한 희망 잡티와 잔주름으로 칙칙해진 감각 노화가 시작된 쪼그라든 작고 때가 낀 뇌 안티 에이징, 링클의 처방이 필요하다 몇 개의 선으로 연결된 단조로운 삶은 동선을 오가며 반복을 반복하고 너덜너덜하게 분절된 의식의 조각들은 불안정한 욕망들과 얽혀 부표처럼 떠돌고 머릿속엔 그 어떤 조작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선택도 결론도 조바심으로 가득한 의도된 판단의 장치들도 재기불능은 아니겠지 두 손 번쩍 들고 투항하려한다 다시 머릿속이 아름다워지는 꿈 촉촉하게 물기 머금은 상상력으로 튕겨오를 듯 탱탱하고 싱그러운 재생을 꿈꾸며 오늘도 바람소리에 잠이 든다. -『우연의 그림 앞에서』, (계간문예, 2015)

나의 詩 2019.01.28

ARS 인생 /금동원

ARS *인생 금동원 전화를 건다 거의 모든 전화는 1588-????/1544-???? 따위로 시작된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도 없이 보이지 않는 저쪽에서 말한다 빠른 서비스를 원하시면 #을, 일반상담은 1번, 상담원 연결은 0번... 1번을 누른다 주민등록번호와 #을 누른다 다시 시작되는 1번을, 2번을, 또는 3번을 신용카드번호나 비밀번호, 사업자등록번호를 전화 속 저편에서 시키는 대로 끝도 없는 미로찾기는 계속되고 난 목소리만 예쁜 그녀를 알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전화통 속에서 그녀가 기계처럼 차갑게 이야기한다. 처음메뉴를 원하시면 #을, 아니면 원하시는 선택버튼을 눌러주세요. 난 아직도 그 미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얼굴과 숨소리를 찾아 계속 버튼을 눌러대고 있다. *ARS [ ..

나의 詩 2019.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