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마음 흙은 물을 머금고 있다. 흙과 물이 만나 만들어내는 특별한 에너지는 인내와 기다림을 거쳐 단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 가을은 습도와 온도가 알맞아 흙과 놀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흙에서 그릇이 되기까지는 기다림과 정성의 시간이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김춘수의 시 「꽃」 중에서) 단 한 편의 시(詩)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참치) 나의 취미 2017.10.19
가을이 오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돌아왔다. 철지난 여름은 늘 가장 무더웠던 계절로 남아있고, 다시 돌아온 가을은 처음처럼 새롭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하늘은 띠끌 한점 없이 드높고 투명하다. 다사다난하고 특별했던 이별과 슬픔을 한묶음의 풍선에 담아 하늘 높이 날려보낸다. 오랜만에 산뜻하고 화사해진 공방에서 오랫동안 흙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하는 물레작업도 새롭고, 굽깍기와 화장토 바르고 머그컵 다듬기도 즐겁고 편안하다. 항상 흙에서 배우는게 있다. 언제나 내가 다가서면 부드럽게 반겨준다. 내 마음이 전하는 손길을 있는 그대로 믿어준다. 서툰 정성과 기다림으로 주고 받는 둘만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올 가을은 예민한 백자토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 서로에게 익숙하게 길들여져 첫 눈 올 때쯤은.. 나의 취미 2017.09.20
마음은 벌써 봄을 기다린다. 토요일부터 이틀 내내 내리던 함박눈이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맞은 편 중학교 운동장을 하얀 설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무도 다녀간 흔적없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눈을 창 밖으로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문득 복수초 생각이 났다. 엄동설한의 추위와 눈 속을 뚫고 가장 먼저 피어난다는 노란 꽃이다. 복수초(福壽草)는 복(福)과 장수(長壽)를, 또는 부유와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이른 봄 산지에서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꽃이 핀다고 하여 ‘얼음새꽃’ ‘눈새기꽃’ 이라고 부르며, 중부지방에서는 ‘복풀’이라고도 부른다. 새해 들어 가장 먼저 꽃이 핀다고 하여 원일초(元日草)란 별호를 가지고 있는 복수초의 이른 개화 시기는 공교롭게도 음력 설 무렵과 일치하기도 한다, 실제 제주도 한라산이나 오름등을 산행하다보면 .. 나의 취미 2017.01.22
도빛 공방에서의 가을 맞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듯 유난스럽게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신비로운 자연의 섭리 앞에 새삼 고개 숙이는 요즘이다. 높고 푸른 하늘과 맑은 햇살 , 싸아~한 바람의 감촉... 충만하고 풍성함으로 가득한 가을 날이다. 도자기 작업하기에도 참 좋은 계절이다. 흙을 반죽하여 물레를 돌리고, 그릇이 완성되면 화장토를 바르고, 굽을 깍고 ,건조시키고... 모든 것이 오랜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리 둘만의 대화를 나누 듯 오래간만에 수작업으로 줄무늬를 새겼다. 초벌구이와 분청 시유작업이 끝나고, 재벌구이를 마치면 내 곁으로 돌아 올 새 그릇으로 가을 맞이 밥상을 차려봐야겠다. 나의 취미 2016.10.13
꽃샘 추위가 전해주는 봄소식 세월 참 빠르다. 한 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물이 소생한다는 경칩이 지나갔다. 계절도 뒤죽박죽, (추우면 춥다고 난리, 더우면 덥다고 또 난리, 우리들은 참 변덕스럽고 소란스럽게 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다.) 제 멋대로 절기를 무시한 채 포근한가 싶으면 눈이 내리고, 날이 춥겠구나 옴츠리면 더없이 화창한 햇살로 그득하다. 요 며칠 꽃샘 추위로 제법 쌀쌀하다. 어정쩡하게 넣지 못하고 두었던 겨울 옷을 잠시 다시 꺼내 입는다. 그러나 봄의 기운이 옷 속을 뚫고 들어와 몸과 마음에 쌓여있던 으슬하고 쌀쌀한 꽃샘 추위를 몰아낸다. 봄이 온 것이다. 코 끝에서 느껴지는 이 싱싱하고 활기찬 생명의 열기를 모른 척 할 수 없으리라. 봄은 봄인 것이다. 꽃샘 추위가 전해주는 봄소식은 쌀쌀하지만 상큼하다... 나의 취미 2016.03.09
달 항아리의 꿈 언젠가, 경복궁 국립 박물관에서 마주했던 달 항아리를 보는 순간, 숨이 멎었던 먹먹한 느낌을 기억한다. 단아하지만 그 안에 숨겨놓은 뜨거움과 열정을 보았다면... 소스라치게 놀랍던 고요함 속에 품고 있는 불덩이를 보았다면... 또 언젠가, 화가 김환기의 그림 안에서 마주했던 달항아리는 웃고 있었다. 나를 아느냐고... 왜 나를 이토록 흠모하느냐고... 내 생을 나의 뜨거운 숨소리를 느껴 본 적이 있느냐고... 담백함 속에 숨어있는 결코 정형화 될 수 없는 단 하나의 균형미! 최초로 흙을 만지고, 느끼고, 함께 호흡했을 도공만이 품어 안을 수 있는 교감과 흙의 목소리다. 절대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단단함이 있다. 그 속에 감춰둔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생애 꼭 한번은 그대를 품어 심장이 멎듯 벅차오르.. 나의 취미 2015.07.28
우리는 어디서 무엇으로 만날까 처음 한 덩어리의 흙을 앞에 놓고 한없이 한없이 바라 보던 그 날이 떠오른다. 너는 무엇이냐~~ '흙'이라는 생명없는(?) 무형의 이름을 달고 황토빛으로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 때 흙을 향해 던진 첫 물음이였다. 나의 체온과 너의 감촉이 처음 만날 때의 그 황홀하고 설레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까. 무형에서 유형으로, 생명없음에서 생명으로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을미년 올해, '흙' 너와의 치열하고 격렬한 부딫힘으로 너에게로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나의 취미 2015.01.21
새출발 우리는 매년 새해가 되면 굳이 알록달록한 의미들을 부여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임을 알고 있기에 스스로에게 내리치는 죽비의 경책이라고 생각하면서 각설하고. '지금 이순간'의 삶에 충실하자고 누누이 다짐하지만 그 경계를 지키고 중심을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는 늘 출발한다. 올해는 시 쓰기만큼이나 흙과 조금은 치열하게 다투고, 화해하고, 고민하고 소통해야 할 듯하다. 이미 여러 작품의 판작업을 통해 기싸움은 시작되었다. 올가을 목표(!)를 향한 흙과의 사랑전쟁이 시작되었다. 출발~~~ 나의 취미 2015.01.16
올해는 여기까지 올해 마지막으로 가마에서 구워낸 작품들이다. 이제는 한 해가 가고, 또 한해를 맞이함에 대한 견고한 의지는 사라지고 없다. 어쩌면 나이와 나이, 시간과 시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삶에 무감각 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으로 이미 모든 상황(^^)들을 자각하고, 심정적으로 느낌 아니까~~ 침묵할 밖에. 새해에는 분에 넘치는 원대한 계획(도자기전시회)에 대한 설렘 하나쯤 마음에 품고 흙과 마주하려 한다. 우리 모두 새해에도 건강하기를! 나의 취미 2014.12.17
살아 남는 법 젊은 시절의 우리는 삐딱하거나 뾰족하거나 각진 모습을 하곤 했다. 그런 날카롭고 예민함에서 풍기는 에너지가 위협적이기 보다는 세상을 향한 겁을 감추기 위한 젊음 특유의 허세와 겉멋이였음을 안다. 그 시절을 겪어내며 통과해야만 했던 우리들의 아픔과 고통의 흔적은 아니였을까. 지금의 우리는 둥글다. 구석구석 격렬한 삶의 부딫힘과 승자도 패자도 없는 고단한 일상의 언덕을 넘어오며 스스로 깍기고 마모되어진 맨들맨들한 부드러움, 뾰족함이 사라진 여유로움과 편안함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도자기 사각접시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뾰족한 사각을 유지하며 뒤틀리지 않는 원판을 유지시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흙반죽을 밀고 밀고 밀고를 반복하며 균일한 밀도의 판을 만들어도, 두께의 미묘한 평형이 깨지거나 건조과정에서.. 나의 취미 2014.09.20
쌀항아리 또 다른 의미의 출산이다. 두 아들의 탄생을 통해 이미 오랜 기도와 고통스러운 기다림이 크면 클수록 환희로움과 기쁨도 컸음을 알고 있다. 처음 흙을 반죽하면서 느꼈던 결과에 대한 욕심은 오랜시간 흙과 함께 부비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시간들을 통해 소멸된다. 온전히 흙과 나와의 관계안에서 집중하고 평화가 깃든 기다림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힘을 빼는 순간 자동차와 내가 합일되듯이 편안해졌던 운전, 요가의 힘든 동작들을 풀고 이완할 때 밀려드는 투명한 행복감,... 모름지기 모든 것이 힘을 뺄 수 있을 때 비로소 바로 보이는 것이다.(금동원) 나의 취미 201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