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2

유리의 존재/ 김행숙

유리의 존재 김행숙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 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락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 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 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 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거야. 나는 곧, 곧, 무 슨 일이든 저지르고 말 것 같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

수치심(羞恥心)이라는 명제/ 구상

수치심(羞恥心)이라는 명제 구상 동물원 철책(鐵柵)과 철망(鐵網) 속을 기웃거리며 부끄러움을 아는 동물을 찾고 있다, 여보, 원정(園丁)! 행여나 원숭이의 그 빨간 엉덩짝에 무슨 조짐이라도 없소? 혹시는 곰의 연신 핥는 발바닥에나 물개의 수염에나 아니면 잉꼬 암놈 부리에나 무슨 징후라도 없소? 이 도성(都城) 시민에게선 이미 퇴화(退化)된 부끄러움을 동물원에 와서 찾고 있다, -『문학사상(文學思想)』 , 1988년 3월호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국정 전면 복귀 노골화…청 ‘총리에 권한 이양’ 수습책 뒤집어 [경향신문]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 2016.11.18 22:06:01 수정 : 2016.11.18 22:07:05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 등 8일 만에 공개 일정 소화 ..

광화문 이순신/ 최두석

광화문 이순신 최두석 이순신의 생애와 동상을 세운 조각가의 삶은 다르다 조각가의 삶과 동상을 세우게 한 정치인의 삶은 다를 것이다 온갖 차량이 분주히 맴도는 거리에 낡은 무기 큰 칼을 짚고 침묵으로 서 있는 광화문 이순신이여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당신에게 맡겨진 일은 인간 이순신의 삶에 닿아 있는가 조각가의 예술에 닿아 있는가 아니면 정치인의 이념에 관계되는가 너무도 당당하여 오히려 서글픈 당신의 등 뒤에는 오색 단청 광화문이 굳게 완강히 닫혀 있고 정치는 그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멀뚱멀뚱 쳐다보며 길을 가는 시민들 앞에서 당신은 무슨 낡은 이데올로기를 지키려고 네거리에 서 있는가 광화문 이순신이여. - 『대꽃』(문학과지성사, 1984)

경이로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경이로움 비스와바 쉼보르스키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한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 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

바람의 냄새/윤의섭

바람의 냄새 윤의섭 이 바람의 냄새를 맡아 보라 어느 성소를 지나오며 품었던 곰팡내와 오랜 세월 거듭 부활하며 얻은 무덤 냄새를 달콤한 장미 향에서 누군가 마지막 숨에 머금었던 아직 따뜻한 미련까지 바람에게선 사라져 간 냄새가 있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그녀의 머리 내음 숲을 빠져나오다 문득 햇살에 잘려 나간 벤치의 추억 연붉은 노을 휩싸인 저녁 내 옆에 앉아 함께 먼 산을 바라보며 말없이 어깨를 안아 주던 바람이 망각의 강에 침몰해 있던 깨진 냄새 한 조각을 끄집어낸다 이게 무언지 알겠느냐는 듯이 바람이 안고 다니던 멸망의 도시의 축축한 정원과 꽃잎처럼 수없이 박혀 있는, 이제는 다른 세상에 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전혀 가 본 적 없는 마을에서 피어나는 밥 짓는 냄새가 그런 알지도..

지기(知己)와 친구(親舊)

지기(知己)와 친구(親舊) 진짜 벗은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이다. 겨우 몇번 밖에 못 만났어도 평생(平生)을 함께 한 듯 하고, 멀리 있어도 '같은 하늘 아래'있다는 것 만으로 가슴 벅찬 존재(存在)이다. 친구(親舊)는 많을 수 있지만 그런 벗(知己)은 드물게 마련이다. 때론 스승일 수도 있고 연인(戀人)일 수도 있고 심지어 적(適)일 수도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친밀(親密)함의 정도(定度)와 입장(立場)의 같고 다름을 떠나서 가슴이 가리키는 대로 마음이 따라 가는 것 처럼 신뢰(信瀨)가 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네 인생은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죽음이 가까와지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떠나게 되고 마침내는 혼자 남게 된다. 이렇게 혼자 남아 고독(孤獨)한 개인이 되었을 때, 마지막까지 옆..

유리(瑜璃)의 나날 4 /이기철

유리(瑜璃)의 나날 4 이기철 나는 오래 사색의 흰 길을 걸어왔다 우수가 밟고 온 길은 오히려 화사하고 내 신발은 언제나 진창이었다 고통은 늘 더운 회유를 밀어던지고 내 안에서 살(失)이 되고 작은 일락은 살구꽃처럼 져 내린다 오늘은 항상 위태롭고 수정할 수 없는 어제는 기억 속에서만 따뜻하다 위독한 날들처럼 삶을 긴장시키는 날은 없다 오늘 또 몇 개의 돌에 금이 가고 몇 장의 구름이 내 머리 위에서 흩어지는가 내 옷이 엷을 때 바람은 두텁고 내 기다림이 초라할 때 햇빛은 더욱 부유하다 누가 바람과 햇빛을 제 것이라 하겠는가 아, 어느 가게에서도 황홀한 꾸러밀 살 수 없다 모든 사유들은 시간의 바깥에선 이끼 끼지만 내 껴안고 있는 동안은 순금처럼 번쩍이며 타오른다 육체가 없으면 고통은 없는 것일까 투명한..

방어진 해녀/ 손택수

방어진 해녀 손택수 방어진 몽돌밭에 앉아 술안주로 멍게를 청했더니 파도가 어루만진 몽돌처럼 둥실둥실한 아낙 하나 바다를 향해 손나팔을 분다 (멍기 있나, 멍기---) 한여름 원두막에서 참외밭을 향해 소리라도 치듯 갯내음 물씬한 사투리가 휘둥그래진 시선을 끌고 물능선을 넘어가는데 저렇게 소리만 치면 멍게가 스스로 알아듣고 찾아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마터면 실성한 여잔가 했더니 파도소리 그저 심드렁 갈매기 울음도 다만 무덤덤 그 사투리 저 혼자 자맥질하다 잠잠해진 바다 속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구쳐올랐다 하아, 하아--- 파도를 끌고 손 흔들며 숨차게 헤엄쳐 나오는 해녀, 내 놀란 눈엔 글쎄 물속에서 방금 나온 그 해녀 실팍한 엉덩이며 볼록한 가슴이 갓 따올린 멍게로 보이더니 아니 멍기로만 보이더니 한 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