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3

타령조*2 / 성춘복

책머리에서 살아온 내력이 아득하다. 그저 그렇다는 뜻이려니 의미를 찾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돌이켜보아 깊이는 물론 허술하기조차 하여 송구하다. 원래 발자국소리는 내지 않는 법. 구접스럽고 부끄러워 내세울 바 없으나 이왕 서둘렀으니 어여삐 보아주시기 바란다.(2015.3.14) 타령조 *2 성춘복 어찌보면 늘 홀몸이라 매양 부딪치며 엉얼거리다가 제 풀에 기가 죽고 말지만 스스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쭉정이 같은 노랫가락으로 가슴 저림을 토닥거리며 살아냈으나 겉치레나 옷차림쯤이사 뜻없음의 새김이라 할 지라도 내 구원의 덮개거니 믿었었고 정체 모를 슬픔의 늪에서 그림자마저 헹구어 말리는 내 버릇을 또 달래기도 했거니와 하늘이여, 제발 올 한 해만은 아득한 높이의 내 나이를 좀 낮추어 저 산 아래 엎어지게 하..

내일의 유리(瑜璃)2/ 이기철

내일의 유리(瑜璃)2 이기철 침묵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이 다시 침묵이 될 때 열매가 익듯 내가 익을 수 있다면 내 천개의 머리카락을 뽑아 진흙 위에 펴리니 내 지닌 고뇌들이여, 마음의 진흙을 밟고 가거라 어느 끼니에선들 고뇌 없는 수저를 들겠는가 뿌리들이 물이 그리워 스스로 깊어질 때 맨땅에 누운 돌에는 마침내 피가 돌리 흐리고 사나운 마음을 밤마다 매질하면 마침내 정신은 금강석같이 굳은 금결이 될까 몸이 빌려온 수만의 밥그릇 앞에서도 영혼은 바위처럼 초연할까 나무야, 너는 얼마만한 채찍질로 그토록 우아한 육체를 완성하였느냐 내 수정같이 맑고 장석같이 녹슬지 않은 영혼 찾아 헤매는 나날 영혼의 빈곤을 쓰다듬어주던 근심의 조각들 내 한덩이 돌 얹지 않은 땅 위에 학교가 세워지고 공장이 서는 일 거룩하여라..

음악/ 보들레르

음악 보들레르(Baudelaire, 1821~8167) 음악은 때때로 바다처럼 나를 사로 잡는다. 나는 출발한다. 창백한 별을 향해, 자욱한 안개 밑으로 때로는 끝없는 창공 속으로 돛대처럼 부푼 가슴 앞으로 내밀고 밤에 묻혀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나는 탄다. 나는 느낀다. 신음하는 배의온갖 정열이 진동함을.순풍과 폭우와 그리고 그 진동이나를 흔든다. 광막한 바다위에서.음악은 때로는 고요한 바다,내 절망의 거대한 거울. -『천양희 시의 숲을 거닐다』, (2006, 샘터 )

축복경(Mahamangalasutta)

축복경(Mahamangalasutta) 1. 어리석은 사람을 사귀지 않으며, 슬기로운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2. 분수에 맞는 곳에서 살고, 일찍이 공덕을 쌓아서,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3. 많이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여,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4.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돌보고 일을 함에 혼잡스럽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5. 나누어주고, 정의롭게 살고, 친지를 보호하며, 비난받지 않는 행동을 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 6. 악함을 싫어하여 멀리하고, 술 마시는 것을 절제하고,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으니 이것이야말..

봄볕 / 서정주

https://youtu.be/TnA8Wq42sKQ 봄볕 서정주 내 거짓말 王宮의 아홉 겹 담장 안의 김치 속 속배기의 미나리처럼 들어 있는 나를 놋낱같은 봄 햇볕 쏟아져 나려 六韜 三略으로 그 담장 반남아 헐어, 내 옛날의 막걸리 친구였던 바람이며 구름 仙女 치마 훔친 버꾸기도 불러, 내 오늘은 그 헐린데를 메꾸고 섰나니……. - 『미당 시선집』, (1994, 민음사)

射手의 잠/ 박기영

射手의 잠 박 기영 그날, 어둠 쌓인 슬픔 속에서 내가 버린 화살들이 어떤 자세로 풀밭 위에 누워 있는지 모르더라도 나는 기억해내고 싶다. 빗방울이 모래 위에 짓는 둥근 집 속으로 생각이 젖어 들어가면 말라빠진 몸보다 먼저 마음 아파오고, 머리 풀고 나무 위에 잠이 든 새들이 자신의 마당에 떨어진 별들의 그림자를 지우기도 전에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은 어떻게 스스로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둘 수 있는지. 추억의 손톱 자국들 무성하게 자란 들판 너머로 노랗게 세월의 잎사귀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는 벽에 기대어서도 하늘 나는 새들의 숨쉬는 소리 들을 수 있고, 숲에 닿지 않아도 숨겨진 짐승의 발자국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접혔던 전생의 달력을 펴고 이마에 자라난 유적의 잔가지들을 헤치고 들어가면 태양계..

의자가 있는 골목- 李箱에게/ 변희수

의자가 있는 골목- 李箱에게 변희수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둘 만한 일이오 의자는 오늘도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서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의자는 필요한 것이오, 그런 질문들은 참 난해하오 의자를 옮겨 앉는다 해도 해결되진 않소 책상 위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백지가 있소 기다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소 다행히 의자에게는 의지가 있소 대화할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어떤 사람들은 시를 좋아한다 Niektorzy lubia poezje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 어떤 사람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이란 전부가 아닌, 전체 중에 다수가 아니라 단지 소수에 지나지 않는 일부를 뜻함, 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과 시인 자신들을 제외하고 나면 아마 천 명 가운데 두 명 정도에 불과할 듯, 좋아한다--- 여기서 '좋아한다'는 말은 신중히 해석할 필요가 있음, 치킨 수프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럴듯한 칭찬의 말이나 푸른색을 유달리 선호하는 이들이 있으므로, 낡은 목도리에 애착을 갖기도 하고, 뭐든 제멋대로 하기를 즐기거나,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으므로, 시를 좋아한다는 것--- 여기서 '시'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 ..

모네/ 도종환

모네 도종환 경멸을 유파의 이름으로 삼으리라 데생의 기본도 안 되었다는 야유를 초보들의 희미한 초벌그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조롱을 역사적 배경도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비웃음을 있는 그대로 접수하고 그 위에 목탄을 칠한 뒤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지우리라 그대들이 개막식 테이프를 끊고 건배를 드는 건물 밖에서 우리는 낙선자 전시회를 준비하리라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햇살 초록의 잎새 위에서 찬란하게 몸을 바꾸던 빛 그것들을 만나기 위해 화실 밖으로 나가리라 화폭 밖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리라 본 것을 다 그리지 않으리라 몇 장의 수련 잎과 그 위에 앉은 불온한 구름 원근과 명암에 구애받지 않는 깊은 하늘을 옮겨 오리라 수면을 덮는 짙은 녹색 물살과 그네를 타는 버들잎으로 다시 기뻐하리라 경멸, 오 고..

단어를 찾아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단어를 찾아서 Szukam slowa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내 안에 무덤들이 똬리를 틀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