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2

시작법(시론)/ 아치볼트 매클리시

시론(Ars Poetica) -아치볼트 매클래시(1892~1982) 시는 만져지고 묵묵해야 한다 마치 둥근 과일처럼 소리없이 엄지에 닿는 옛 메달처럼 마치 이끼에 자라난 소매에 닳은 창문 선반의 돌처럼 조용해야 한다 시는 말이 없어야 한다 마치 새들의 비상처럼,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르 듯이 그대로 두면서, 마치 달이 풀어 놓듯이 밤중에 얽힌 나무 가지 하나하나씩 그대로 두면서, 마치 겨울 잎새 뒤에 있는 달이 마음의 기억을 하나하나 풀어 놓듯이 시는 시간 속에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마치 달이 떠오르듯이 시는 동등해야 한다 사실이 아닌 것에, 모든 슬픔의 역사를 위해서는 기울어진 풀들과 바다 위에 뜬 두 불빛을 시는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 ■매클리시(1892~1982..

최익현/ 오태환

최익현 오태환 1. 엎드려서 울고 있다 낮게 내려 앉은 대마도의 하늘 성긴 눈발, 춥게 뿌리고 있다 바라보고, 또 바라보아도 서릿발 같은 바람소리만 어지럽게 쌓이는 나라의 산하 불끈 쥔 두 주먹이 붉은 얼굴을 감춰서 설악같은 울음이 가려지겠느냐 파도같은 분노가 그만 가려지겠느냐. 어둡게 쓰러지며 울고 있다. 희디 흰 도포자락 맑게 날리며 성긴 눈발, 뿌리고 있다. 눈감고 부르는 사랑이 무심한 시대에 하염없이 하염없이. 2. 바다가 보이는 곳 한 채의 유림이 춥게 눈발에 젖어 있다. 희고 작은 물새 하나가 끌고 가는 을사 이후의 정적 너무 크고 맑구나. 서럽게 서럽게 황사마다 사직의 흰 뼈를 묻고 일어서는 낫, 곡괭이의 함성이 들린다 불길 타는 순창의 하늘 말발굽 소리의 눈발, 희미하게 날린다 문득 돌아다..

사랑론論/ 허형만

사랑론論 허형만 사랑이란 생각의 분량이다. 출렁이되 넘치지 않는 생각의 바다. 눈부신 생각의 산맥. 슬플 때 한없이 깊어지는 생각의 우물. 행복할 땐 꽃잎처럼 전율하는 생각의 나무. 사랑이란 비어있는 영혼을 채우는 것이다. 오늘도 저물녘 창가에 앉아 새 별을 기다리는 사람아. 새 별이 반짝이면 조용히 꿈꾸는 사람아. 『계간문예』 (2016, 겨울호 통권 46호)

시의 요소/ 괴테

시의 요소 괴테 몇 가지 요소로 순수한 시는 만들어지고 있을까? 일반 사람도 즐겁게 느껴지고 전문가들에게도 기쁘게 읽히기에는 사랑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시인이 노래하는 주제가 되어야 하고 또한 사랑이 시 속에 일관한다면 시는 한결 더 아름다워지리라. 다음엔 술잔 소리도 들려야 한다. 홍옥색 술도 찰찰 넘쳐야한다. 사랑하는 이와 술마시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화환으로 초대되느니 또한 칼(劍) 소리도 필요하다. 그때 나팔소리도 울려퍼져라. 행운이 불붙어 불꽃으로 빛나면 영웅이 행운의 신으로 우러르게 되리라. 마금으로 소홀히 하지 말 것은 시인의 여러 가지 사물에 대한 미움과 참지못할 것과, 보기 흉한 것을 아름다운 것처럼 조작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이 네 가지의 강렬한 원고를 섞어서 쓸 줄 알게 되면 히피즈*처..

출가하는 새/ 황지우

출가하는 새 황지우 새는 냄새 나는 자기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자기가 앉은 가지에 자기가 남긴 체중이 잠시 흔들릴 뿐 새는 자기가 앉은 자리에 자기의 투영이 없다 새가 날아간 공기 속에도 새의 동체가 통과한 기척이 없다 과거가 없는 탓일까 새는 냄새 나는 자기의 체취도 없다 울어도 눈물 한 방울 없고 영영 빈 몸으로 빈털털이로 빈 몸뚱어리 하나로 그러나 막강한 풍속을 거슬러 갈 줄 안다 생후의 거센 바람 속으로 갈망하며 꿈꾸는 눈으로 바람 속 내일의 숲을 꿰뚫어본다 『겨울-나무로 부터 봄 나무에로 ,(민음사,1985년, 재판 1995년)

새해의 기도/ 이성선

새해의 기도 이성선 새해엔 서두르지 않게 하소서 가장 맑은 눈동자로 당신 가슴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기도하는 나무가 되어 새로운 몸짓의 새가 되어 높이 비상하며 영원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게 하소서 새해엔, 아아 가장 고독한 길을 가게 하소서 당신이 별 사이로 흐르는 혜성으로 찬란히 뜨는 시간 나는 그 하늘 아래 아름다운 글을 쓰며 당신에게 바치는 시집을 준비하는 나날이게 하소서 - 이성선 시선집 (시와시학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