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2

바하의 비/ 최가림

바하의 비 최가림 비오는 날에는 아무래도 바하의 미뉴엣이 제일이다 촘촘히 그려진 음표 중에 하나라도 놓치면 나의 연주는 망친다 한평생 연습만 하다 끝나버릴지도 모르는 난해하기만 한 생의 음표들, 몸과 마음을 다 던져 연습한 한 곡조차 능숙하지 못한 손놀림, 마음에서는 검은 구름이 스믈스믈 올라온 도도도 레레레 미미미...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악보들은 점점 흘러내려 흔적도 없이 흐믈흐믈 사라져버린다 비는 박자도 맞지 않는 리듬을 창문에 대고 두들겨 댄다 불협화음만 가득한 이 연주, 몇 시간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바하의 미뉴엣은 오늘도 미완성이다 https://youtu.be/on1DDSLdDOo

행복해진다는 것/ 헤르만 헤세

행복해진다는 것 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

거룩한 갈망/ 괴테

거룩한 갈망 괴테 현자에게가 아니면 말하지 마라 세속 사람은 당장 조롱하고 말리니 나는 진정 사는가 싶이 살아 있는 것을 불꽃 속에 죽기를 갈망하는 것을 찬미한다 그대를 낳고 그대가 낳았던 사랑을 나눈 밤들의 서늘한 물결 속에서 그대 말없이 타는 촛불을 보노라면 신비한 느낌 그대를 덮쳐 오리 그대 더 이상 어둠의 강박에 매이지 않고 더 높은 사랑의 욕망이 그대를 끌어올린다 먼길이 그대에겐 힘들지 않다 그대 마술처럼 날개 달고 와서 마침내 미친 듯 빛에 홀리어 나비처럼 불꽃 속에 사라진다 죽어서 성장함을 알지 못하는 한 그대 어두운 지상의 고달픈 길손에 지나지 않으리 -『괴테 시집』중에서 괴테가 산책하고 사색하던 공원 안에 있는 괴테동상과 벤치(독일 하이델베르그, 2016.6.15)

귀향/ 헤르만 헤세

귀향 -헤르만 헤세 나는 이미 오랫동안 타향의 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난 날의 무거운 짐 속에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가는 곳 마다 넋을 가라앉혀 주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 훨씬 진정됐습니다 그러나 새로이 또 고통을 원하고 있습니다 오십시요, 낯익은 고통들이여 나는 환락에 싫증이 났습니다 자! 우리들은 또 다시 싸웁니다 가슴에 가슴을 부딪고 싸웁니다 -『헤르만 헤세 시선집』중에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 본래 갖추고 있는 위대한 지혜에 이르는 마음의 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다섯가지 쌓임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멸도했느니라. 사리자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 공이 곧 물질이니,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또한 그러하나니라. 사리자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

봄비/ 이수복

봄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외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 시집 『봄비』1969/ -1955년 [현대문학]에 발표 * ​시새워 벙글어진 : 다투어 피어날 * 향연(香煙) : 향이 타며 나는 연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황지우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다 자기 온 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 몸으로 헐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 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 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 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

타령조*2 / 성춘복

책머리에서 살아온 내력이 아득하다. 그저 그렇다는 뜻이려니 의미를 찾자는 것은 더욱 아니다. 돌이켜보아 깊이는 물론 허술하기조차 하여 송구하다. 원래 발자국소리는 내지 않는 법. 구접스럽고 부끄러워 내세울 바 없으나 이왕 서둘렀으니 어여삐 보아주시기 바란다.(2015.3.14) 타령조 *2 성춘복 어찌보면 늘 홀몸이라 매양 부딪치며 엉얼거리다가 제 풀에 기가 죽고 말지만 스스로 믿고 의지해야 한다는 쭉정이 같은 노랫가락으로 가슴 저림을 토닥거리며 살아냈으나 겉치레나 옷차림쯤이사 뜻없음의 새김이라 할 지라도 내 구원의 덮개거니 믿었었고 정체 모를 슬픔의 늪에서 그림자마저 헹구어 말리는 내 버릇을 또 달래기도 했거니와 하늘이여, 제발 올 한 해만은 아득한 높이의 내 나이를 좀 낮추어 저 산 아래 엎어지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