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2

우리의 꿈 세계/ 헤르만 헤세

우리의 꿈 세계 헤르만 헤세 밤이면 꿈에 도시들과 사람들, 괴물들, 허공의 건물들 모두, 모두가, 너도 알지, 영혼의 어두운 공간으로부터 솟아 나온다. 모두가 네 모습과 일, 너 자신의 것이다. 네 꿈이다. 낮에 도시의 골목들을 걸어보라 구름을, 얼굴을 들여다 보라 그러면 놀라 알게 되리 그것들이 네 것이고, 너는 그들의 시인임을! 너의 감각들 앞에서 수백 겹으로 살고 요술부리는 모든 것이 그래, 네 것이야, 네 마음 안에 있어, 네 영혼이 그네 흔드는 꿈이야. 너 자신을 통해 영원히 활보하며 너를 좁히는가 하면, 넓히며, 너는 연설자이고 청중이지 너는 창조주이고 파괴자이지. 오래전에 잊힌 마법의 힘이 성스러운 기만의 거미줄을 치지 그리고 세계, 측량되지 않는 세계가 너의 호흡으로 살아가지 -시집 『헤르..

안부1/ 황지우

안부 1 황지우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어머님 문부터 열어본다 어렸을 적에도 눈뜨자마자 엄마 코에 귀를 대보고 안도하곤 했었지만,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침마다 살며시 열어보는 문: 이 조마조마한 문지방에서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필사적일까? 당신은 똥싼 옷을 서랍장에 숨겨놓고 자신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있는 생을 부끄러워하고 계셨다. 나를 이 세상에 밀어놓은 당신의 밑을 샤워기로 뿌려 씻긴 다음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벗겨드리니까 웬 꼬마 계집아이가 콧물을 흘리며 얌전하게 보료 위에 앉아 계신다. 그 가벼움에 대해선 우리 말하지 말자.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 문학과 지성사)

안부2/ 황지우

안부2 황지우 안녕하신지요 또 한해가 갑니다 일몰의 동작대교 난간에 서서 금빛 강을 널널하게 바라봅니다 서쪽으로 가는 도도한 물은 좀더 이곳에 머물렀다가 가고 싶은 듯 한 자락 터키 카펫같은 스스로 발광하는 수면을 남겨두고 가데요 그 빛, 찡그린 그대 실눈에 대조해 보았으면 했습니다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지난번 엽서, 이제야 받았습니다 숨쉬는 것 마저 힘든 그 공중국가에 제 생애도 얼마간 걸쳐놓으면 다시 살고 싶은 마음 나겠지요마는 연말연시 피하여 어디 쓸쓸한 곳에 가서 하냥 멍하니, 있고 싶어요 머리 갸우뚱하고 물밑을 내려다보는 게으른 새처럼 의아하게 제 삶을 흘러가게 하게요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1998, 문학과 지성사)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습니다. 2. 세상살이에 어려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고난이 없으면 교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 '근심과 고난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습니다. 3. 마음공부 하는데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마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나니 '장애 속에서 해탈을 얻어라' 하셨습니다. 4. 수행하는데 마장(魔障)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견고해지지 못하나니,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돕는 벗을 삼으라.' 하셨습니다. 5. 일을 도모함에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일이 쉽게 성취되면 뜻이 경박하고 교만하여 지나니,'오랜 세월을 통해 일을 성..

겨울/ 홍윤숙(1925~2015)

겨울 홍윤숙 황금빛 은행잎이 아직 온 천지 마을길에 찬란한 날개를 파닥이고 있는 동안은 남은 꿈을 조금만 더 꾸리라 이윽고 황홀한 잔치 끝나고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덮일 때 더는 하릴없이 추억의 얼굴들을 캄캄한 터널 속에 깊숙이 밀어넣고 시든 마음도 함께 밀어넣고 봉인을 하리라 봉인된 추억들은 어둠 속에서도 눈부시던 세상을 잊을 수 없어 터널을 온통 금빛으로 칠해놓고 스스로 금이 되어 잠이 들리라 잠이 든 꿈 옆으로 시간이 느리게 느리게 걸어가서 그 옆에서 눈 깜박거리며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꿈을 지켜보며 목숨 저미며 기다릴 수밖에 없으리라 가끔 버석거리는 가슴 틈새로 어쩌면 연녹색 새순 하나 볼록 돋아날까 오금 조이며 -『불교문예』, (2010, 겨울호) * 얼마 전에 (90세) 돌아가신 홍윤숙 시인님..

等雨量線 1/ 황지우

等雨量線 1 황지우 1 나는 폭포의 삶을 살았다, 고는 말할 수 없지만 폭포 주위로 날아다니는 물방울처럼 살 수는 없었을까 쏟아지는 힘을 비켜갈 때 방울을 더 있게 하는 무지개 ; 떠 있을 수만 있다면 空을 붙든 膜이 저리도록 이쁜 것을 나, 나가요, 여자가 문을 쾅 닫고 나간다. 아냐, 이 방엔 너의 숨소리가 있어야 해. 남자가 한참 뒤에 중얼거린다. 2 이력서를 집어넣고 돌아오는 길 위에 잠시 서서 나는, 세상이 나를 안 받아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파트 실평수처럼 늘 초과해 있는 내 삶의 덩어리를 정육점 저울 같은 걸로 잴 수는 없을까 나는 제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아이들이 마구 자라 수위가 바로 코밑에까지 올라와 있는 생활 ; 나는 언제나 한계에 있었고 내 자신이 한계이다. 어디엔가 나는 모르고 ..

운주사 돌부처님께 말 걸기/ 김창완

운주사 돌부처님께 말걸기 김창완 어느 별에서 망명 온 난민인지요 온몸 가득 마마 자국 더께 진 몰골에 집도 절도 없이 노숙자로 사시는 영구산(靈龜山) 운주사(雲住寺) 돌부처님 왜 하필이면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이 막돼먹은 세상에 오셨는지요 아낙네가 코 떼어 속곳 속에 감춰도 없어도 없지 않고 있어도 있지 않으니 숨 쉬지 않고도 영겁으로 가시며 아둥바둥 사는 이들 깨진 꿈 주워 개떡탑 거지탑 요강탑 쌓아 놓고 어느 새 맘 속에 기척 없이 들어와 탐욕 덩어리 모아 돌탑 천 기 쌓더니 지쳐 널브러진 우리 삶의 너럭바위에 마마 자국처럼 천문도 쪼아 놓고 그 위에 누워 밤낮으로 하늘만 보면서 왜 혼자 빙그레 웃는지요 혹시 고향 별이라도 찾았는지요 아니면 여기가 극락인 걸 깨달았는지요 『유심』 (2015,11 통..

세 개의 변기/ 최승호

세 개의 변기 최승호 1. 변기에서 검은 혓바닥이 소리친다 고통은 위에서 풍성하게 너털웃음 소리로 쏟아지는 똥이요 치욕은 변소 밑 돼지들의 울음이라고 2. 변기여, 내가 타일가게에서 커다랗게 입 벌린 너를 만났을 때 너는 구멍으로써 충분히 네 존재를 주장했다 마치 하찮고 물렁한 나를 혀 없이도 충분히 삼키겠다는 듯이 네가 커다랗게 입을 벌렸을 때 나는 너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리고 내 존재를 주장해야 했을까 뭐라고 한마디 대꾸해야 좋았을까 말해봐야 너는 귀가 없고 벙어리이고 네 구멍 속으로 밑빠진 허(虛)구렁인데 3. 나는 황색의 개들이 목에 털을 곧두세우고 으르릉거리는 것을 보았다 똥을 혼자서 다 먹으려고 으르릉거리는 변기같은 아가리들을 개들의 시절의 욕심쟁이 개들아 너희들은 똥을 먹어도 참 우스꽝스럽고..

목가풍으로 깊어가는 밤/ 심보선

목가풍으로 깊어가는 밤 심보선 처량하고 고요한 이 저녁이 지나면 온갖 경구들을 남발하고 싶어지는 밤이 오리라 오오 그중 단 하나라도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면 궁륭의 암흑을 떠도는 뭇별의 시간을 거슬러 달은 인간의 가슴속에 한 번 더 뚜렷이 떠오른다 영원이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야금야금 찢어 먹는 죽은 쥐새끼 따위가 아니던가 지금 지상의 밤은 노래와 침묵 사이에서 붕붕거리는 밤벌레들 늙은 개를 집으로 부르는 낮은 휘파람 소리 홀로 죽어가는 촌로의 먹은 귓가에 부딪히며 다만 목가풍으로 깊어가고 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차례차례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며 곤한 잠에 빠진다 어디서 누군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는 자다가도 눈을 벌떡 뜰테지만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초』,(2008,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