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원 시인의 TISTORY

이 곳은 시인의 집! 문학과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말합니다

금동원의 우연의 그림 앞에서

시인의 詩를 읽다 252

오드리햅번의 편지-아들에게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어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 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사람에게/문정희

사람에게 문정희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사람, 너는 누구냐밤하늘 가득 기어나온 별들의 체온에추운 몸을 기댄다한 이름을 부른다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허공을 뚫어 문 하나를 내고 싶다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었지만문이 없는 곳 또한 없었다사람, 너는 누구냐 나의 사랑, 나의 사막이여 온몸의 혈맥을 짜서 시를 쓴다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별처럼 내밀한 촉감으로 숨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나는 아름다우냐

쓸쓸/문정희

쓸쓸 문정희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네 우적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릴 때에도 목구멍으로 오롯이 넘어가는 쓸쓸! 손글씨로 써 보네 산이 두 개나 위로 겹쳐 있고 그 아래 구불구불 강물이 흐르는 단아한 적막강산의 구도! 길을 걸으면 마른 가지 흔들리듯 다가드는 수많은 쓸쓸을 만나네 사람들의 옷깃에 검불처럼 얹혀 있는 쓸쓸을손으로 살며시 떼어 주기도 하네 지상에 밤이 오면 그에게 술 한 잔을 권할 때도 있네 그리고 옷을 벗고 무념(無念)의 이불 속에 알몸을 넣으면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와락 나를..

시/김수영

시 김수영 어서 일을 해요 변화는 끝났소어서 일을 해요미지근한 물이 고인 조그마한 논과대숲 속의 초가집과나무로 만든 장기와게으르게 움직이는 물소와(아니 물소는 호남 지방에서는 못 보았는데)덜컥거리는 수레와 어서 또 일을 해요 변화는 끝났소편지봉투모양으로 누렇게 결은시간과 땅수레를 털털거리게 하는 욕심의 돌기름을 주라어서 기름을 주라털털거리는 수레에다는 기름을 주라욕심은 끝났어논도 얼어붙고대숲 사이로 칩입하는 무자비한 푸른 하늘 쉬었다 가든 거꾸로 가든 모로 가든어서 또 가요 기름을 발랐으니 어서 또 가요타마구*를 발랐으니 어서 또 가요미친놈 뽄으로 어서 또 가요 변화는 끝났어요어서 또 가요실같은 바람 따라 어서 또 가요 더러운 일기는 찢어버려도짜장 재주를 부릴 줄 아는 나이와 詩배짱도 생겨가는 나이와 詩..

끓다/김혜순

끓다 김혜순 밤하늘 깊숙이 날아가는 너그러나 나는 자다가도 너의 열원을 감지한다공대공 미사일 발사!먼 하늘에서의 가열찬 폭파!잠시 후 냄비에서 물이 끓는다잠자기는 글렀으니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하마터면 냄비 속에 손을 집어넣을 뻔했다끓는 물이 너무도 시려 보여서손 대신 냄비에 얼굴을 집어넣고 뭐라고 뭐라고 해본다수만 겹의 고막이 끓는가?아니면 탄생과 소멸의 은유인가?졸아붙는 물속에서 수만 개의 모스부호가 요동친다통성 기도 중인 예배당 같다상공으로 치솟아 거친 기류를 헤치고천천히 선회하다가 급강하하는 콘도르그 먼 시선으로 끓는 물을 내려다보기도 한다누군가 숲 속에 헬리콥터라도 몰래 숨겨놓았나?저 먼 곳에서 숲의 나무들이 끓는 소리몸 내부로만 꽂힌 수만개의 붉은 전선들이안으로 안으로 전기를 방출하기 시작한..

꽃이 질 때/문정희

꽃이 질 때 문정희 사내들은 이렇 때 사창가를 어슬렁 거리나 보다아무하고도 자고 싶지는 않지만아무도 모르는 곳에 눕고 싶을 때가 있다오늘도 나의 생은 상처 속에서 찰랑거렸다외출을 하면 전신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활기가 있다고 했다활기는 내슬픔의 진액, 외로움이 내뿜는 윤기이다사막에서 때로 뒷걸음으로 걸었다는 한 사내를 알고 있다너무 외로워 자기 앞의 발자국을 보려고 그랬다고 한다나는 일기를 쓰지 않지만내 앞에 찍힌 발자국을 홀로 꺼내 볼 때가 있다거기에 담긴 폭풍과 난파와 침몰의 음률을 듣는다피와 굴종과 무위로 얼룩진 붉디 붉은 그림자를두근거리며 바라 볼 때가 있다나의 발자국은 유배의 운명, 유랑의 주소를 향해편도로 찍혀있다나의 대지는 길과 사이이다거기에도 어림없이 상처가 피어나고따..